[기고] 그늘 없는 폭염 현장, 쉬면 손해 보는 노동자들안전관리자 없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폭염 대책 강구해야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이다. 전국 곳곳에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극심한 무더위 속 하루 200명 가까운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벌써 누적 사망자도 20명을 넘겼다.
폭염 속 야외 작업이 이어지는 건설 현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폭염에 따른 작업 중단이 반복되면서 건설현장의 공정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 건설공사는 철근 배근과 콘크리트 타설 등 선행 공정이 늦어지면 설비·마감 등 후속 작업도 연쇄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폭염은 단순히 '덥다'는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몸과 작업 환경을 동시에 바꿔놓아 산업재해 위험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고온에 오래 노출되면 심부체온이 오르고 수분과 전해질이 빠져나가면서 중추신경계 기능이 떨어진다. 눈과 귀로 들어오는 위험 신호에 반응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장비를 다루거나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도 함께 무뎌진다. 열사병이나 열탈진 초기에 나타나는 어지럼증, 시야 흐림, 순간적인 의식 저하는 비계나 지붕 위 같은 고소작업에서 곧바로 추락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몸에서 나는 땀도 위험 요인이다. 땀이 피부의 전기저항을 떨어뜨려 평소라면 무사히 넘어갈 미세한 누전에도 감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오폐수 처리조나 맨홀 같은 밀폐공간에서는 기온이 오를수록 유기물이 빠르게 부패하며 황화수소·일산화탄소 같은 유해가스 농도가 급격히 높아져 질식사고 위험도 함께 커진다.
왜 소규모 현장에서 더 위험한가 대기업은 폭염 대비 안전관리 체계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위험이 오히려 더 크게 작용하는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정작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노동자의 생계 구조와 사업장의 계약 조건이라는 의지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일용직이나 성과급제로 일하는 노동자에게 휴식은 곧 그날 일당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몸에 이상 신호가 와도 이를 감추고 작업을 강행하는 '생계형 고위험 노동'이 벌어진다.
하도급 구조의 말단에 있는 영세 사업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폭염으로 작업을 멈추면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지체상금은 고스란히 사업주가 떠안아야 한다. 이런 계약상 불이익 때문에 기온이 가장 높은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도 작업을 멈추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기에 제도적 공백도 겹친다.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 선임 의무 대상에서 빠져 있어 체감온도를 재고 휴식 주기를 관리할 사람 자체가 없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역시 이런 현장에서는 실제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영세 사업장에서 폭염 속 작업 중지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과 생존'의 문제다. 쉬는 것이 손해로 이어지지 않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한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중소사업장의 폭염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비용 보전, 저비용 모니터링 기술, 공유 인프라를 함께 묶은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산업재해보상보험기금을 활용해 폭염 특보가 발령됐을 때 작업을 중단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게 1~2시간분의 '폭염 안심 휴식 수당'을 직접 지급하는 방안이다. 쉬는 행위가 곧바로 임금 손실로 연결되는 구조부터 끊어내야 한다. 동시에 하청업체가 폭염 피크 시간대 작업 중지로 발생한 공기 연장을 신속히 인정받고 그에 따른 간접노무비를 받을 수 있도록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작업 중지로 공기가 늘어났을 때 지체상금을 면제해주는 '패스트트랙'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안전모에 부착할 수 있는 저렴한 초저가 웨어러블 센서와 스마트 알람을 보급하는 방법이 있다. 체온이 위험 수준에 이르면 모바일 기기로 휴식 알람이 전달되는 객관적인 관제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공간과 예산이 부족한 영세 현장을 위해서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냉방 장치를 갖춘 '모바일 쿨링 파드(Mobile Cooling Pod)'를 무상으로 대여하고 순회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물리적인 쉼터가 아예 없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안전은 시혜가 아니라 투자다 폭염 대응은 단순한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사업장의 연속성과 노동자의 생존권을 함께 지키는 핵심 투자다.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중소사업장에 비용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제도적 수당 지원, 스마트 안전보건기술의 저비용 보급, 지자체 밀착형 인프라 공유가 삼각편대를 이룰 때 비로소 중소사업장 노동자들도 그늘 아래서 마음 편히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은 규제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체감하는 실질적인 지원에서 시작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전문가 모임 대표, 공학박사· 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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