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철근’보다 ‘사람’을 뺐다, 품질관리자 없는 현장의 비극건설사들의 탐욕으로 유령이 된 품질관리자
건설현장 붕괴사고와 부실시공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GTX-A 서울 삼성역 철근 누락사고를 비롯하여 무량판 구조 아파트 철근 누락 사고부터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에 이르기까지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고강도 대책을 쏟아냈고 국회는 법을 바꾸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현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사고의 표면적인 원인은 철근 누락과 부실 콘크리트 타설 등으로 발표되지만 그 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구조적인 인력 부족과 비정상적인 현장 운영이라는 고질적인 병폐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현장의 두 가지 핵심 축인 안전과 품질 중에서도 법정 품질관리자가 본연의 역할을 잃고 공사와 공무 업무에 전방위로 차출되는 유령 인력으로 전락한 현실은 대한민국 건설업계의 가장 뼈아픈 사각지대다. 건물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대형 부실을 막아야 할 품질관리자가 사라진 현장에서 제대로 된 구조물이 지어질 리 만무하다.
안전에 가려진 품질의 사각지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건설업계의 풍경은 표면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최고경영자(CEO) 처벌이라는 강력한 사법적 리스크 덕분에 현장의 안전관리자는 귀한 몸이 됐다. 본사 차원에서도 안전관리자만큼은 법적 기준을 철저히 준수해 배치하고 이들이 다른 업무를 겸하지 않고 안전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지원한다. 최소한 안전 분야에서는 법이 어느 정도는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품질관리자의 처지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 현장에는 반드시 품질관리자를 배치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지만 현장에서 이 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시공사 경영진의 눈에 품질관리자는 구색 맞추기 서류 작업이나 하는 유휴 인력 혹은 언제든 현장 일손으로 대체 가능한 예비 부품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공사 기간(공기) 단축과 인건비 절감이 최우선인 현장에서 품질관리자는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다. 공사 담당 직원이 부족하면 품질관리자를 현장에 투입해 공정을 관리하게 하고 공무(내역, 정산, 계약) 담당자가 모자라면 품질관리자에게 서류 뭉치를 떠넘긴다. 법적으로는 품질관리자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 하루 일과는 공사 담당자나 공무 직원의 삶을 사는 기형적인 겸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유다.
품질관리의 공백이 부른 부실과 붕괴의 도미노
품질관리자가 본연의 업무에서 이탈할 때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구조물의 붕꾀나 전도와 같은 구조적 안전 결함으로 이어진다. 품질관리자의 핵심 임무는 콘크리트 타설 전 철근 배근 상태를 정밀하게 확인하고 타설 중인 콘크리트의 강도와 슬럼프(점도)를 시험하며 반입되는 자재가 설계 기준에 부합하는지 철저히 검수하는 일이다.
그러나 품질관리자가 공사와 공무 업무에 쫓겨 현장 품질점검을 나가지 못하면 그 공백은 시공을 담당하는 협력업체(하도급사)의 작업자들에게 전적으로 위임된다. 공기 압박에 시각을 다투는 타설 현장에서 꼼꼼한 품질 검증 없이 콘크리트가 부어지고 철근이 덮인다. 한 번 타설된 콘크리트 내부의 부실은 건물이 무너지거나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육안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최근 몇 년간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대형 붕괴사고들의 내면에는 이처럼 대충 눈감고 넘어간 품질 점검의 부재가 완벽히 자리 잡고 있었다.
품질은 사후에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과 마찬가지로 매 순간 실시간으로 확보해야 하는 가치다. 하지만 품질관리자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고 현장에서는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 구조안전의 기초 체력인 품질이 무너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품질이 곧 안전’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
이제는 구조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더 이상 시공사의 양심이나 현장 소장의 재량에 품질관리를 맡겨둘 수 없다.
첫째, 품질관리자는 현행법상으로 품질관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지만 공사나 공무 등 타 업무 수행에 대한 단속과 처벌 규정은 느슨하기 짝이 없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기 점검 시 서류상의 배치 확인을 넘어 실제 작업일지와 업무 분장을 조사해 겸직 적발 시 시공사에 영업정지에 준하는 강력한 벌점과 과태료를 부과하는 실효성 있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둘째, 고위험 공종이 포함된 현장의 품질관리 인력 배치 기준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 현재는 단순히 총공사비 규모에 따라 품질관리자 인원수가 정해진다. 하지만 무량판 구조, 초고층 건축, 대규모 지하 굴착 등 고도의 품질관리가 요구되는 고위험 현장에는 공사비 규모와 관계없이 특급 품질관리자를 비롯하여 일정 인력 이상의 시공관리자를 필수 배치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품질관리비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발주자가 공사비 내역에 책정해 주는 품질관리비가 시공사의 일반 이윤이나 타 공사비로 전용되지 않도록 해당 비용의 집행 내역을 별도로 관리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품질관리자의 인건비가 온전히 품질 확보에만 쓰이도록 재정적 독립을 시켜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품질관리자에게 부실시공 징후 발견 시 즉각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작업 중지권과 신분 보장책을 부여해야 한다. 발주자나 경영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이대로 타설하면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 권한과 구조가 정착되지 않는 한 품질관리자는 영원히 현장의 ‘을’로 남을 수밖에 없다.
튼튼한 뼈대 없는 안전은 신기루
중대재해처벌법이 건설현장의 사고 발생을 막는 긴급 브레이크라면, 철저한 품질관리는 건축물 자체의 수명과 안전을 담보하는 엔진 오일과 같다. 아무리 현장에서 안전모를 쓰고 추락 방지망을 설치한들 건물 자체의 뼈대가 부실해 무너진다면 그 어떤 안전 대책도 무용지물이다.
건설현장에 충분한 기술 인력을 배치하고 그들이 원래 맡은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비용의 낭비가 아니라 미래의 대형 참사를 막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품질이 곧 안전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 또다시 무너져 내리는 구조물 앞에서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려야 할지 모른다. 정부와 건설업계의 즉각적이고 결단력 있는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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