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설의 언어를 다시 써야 한다

GTX 누락 사태가 폭로한 설계 해석의 민낯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6/06/02 [15:27]

[기고] 건설의 언어를 다시 써야 한다

GTX 누락 사태가 폭로한 설계 해석의 민낯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6/06/02 [15:27]

▲ 최명기 교수   © 매일건설신문

 

사고는 현장에서 나지 않는다. 도면 위에서 이미 시작된다. 전문가끼리 도면이 엇갈리는 사이 시민들은 그 위를 걷거나 그 아래를 걷고 있었다.

 

최근 발생되고 있는 건설 사고의 반복은 단순한 현장 관리의 문제를 넘어 설계와 해석 체계 전반의 허술함을 드러낸다. GTX-A 철근 누락 사태에서 도면 해석 오류가 원인이 되었듯 최근 서소문 고가 해체공사 중 붕괴사고에서도 동일한 혼선이 나타났다.

 

GTX-A 노선의 철근 누락 사태가 알려졌을 때 많은 시민들이 느낀 것은 분노보다 먼저 공포였다. 수십 년을 사용할 국가 기간 교통망을 짓는 현장에서 철근이 빠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설계 도면의 해석 오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믿어온 건설 안전의 기준이 실은 허술한 관행 위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서소문 고가 붕괴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출퇴근길에 수천 명이 오가던 도심 한복판의 구조물이 해체공사 중 무너졌고 사고 원인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와 언론의 발표가 엇갈렸다. 시민들은 사고 자체보다 그 혼란스러운 해명에서 더 큰 불안을 느꼈다. 내가 사는 도시의 행정이 무너진 구조물이 어느 부위인지조차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지금 내 머리 위를 지나는 다리와 터널은 과연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가.

 

사고가 발생하자 서울시는 S9구간 G16번 거더가 붕괴됐다고 발표했다. 얼마 후 언론에서는 G16 거더 내부에 있던 강선이 파단된 곳이 붕괴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서울시 발표와 달리 2019년에 실시된 정밀안전진단 결과는 붕괴 지점(G1)과 강선 파단 위치(G16)가 정반대였다. 도면의 표기 방식이 불명확해 현장과 행정, 언론의 진단이 엇갈렸다. 이는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안전관리 체계의 신뢰를 흔드는 중대한 문제다.

 

공문처럼 명확해야 한다, 소통의 언어 문제

 

직장에 처음 들어가면 누구나 공문 작성 요령부터 배운다. 공문의 핵심 원칙은 단 하나다. 그 문서를 처음 보는 사람도 읽는 즉시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입사원도 담당자가 바뀐 후임자도 감사를 나온 외부인도 동일하게 읽고 동일하게 행동할 수 있어야 비로소 공문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건설 도면도 마찬가지다. 도면은 설계자와 시공자, 감리자, 행정 담당자, 그리고 사고 이후 조사위원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시점에 읽는 문서다. 그런데 서소문 고가 붕괴 사고에서 드러난 것처럼 G1과 G16이라는 표기 하나가 현장과 행정과 언론 사이에서 서로 다른 위치로 읽혔다. 공문이라면 절대 허용되지 않을 일이 설계 도면에서는 버젓이 통용되어 온 것이다. 도면을 처음 보는 사람도 현장을 모르는 행정 담당자도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표기 체계를 갖추는 것은 기술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기본 원칙이다.

 

그리고 이 소통의 실패가 가장 먼저 상처를 입히는 것은 기술자도 행정가도 아닌 시민이다. GTX-A를 타게 될 승객들은 철근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스스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서소문 고가 아래를 걷던 시민들은 그 구조물에 2019년 정밀안전진단에서 이미 문제가 발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문가들끼리 도면 표기가 엇갈리는 사이 시민들은 그저 그 공간을 믿고 이용했을 뿐이다. 안전은 시민이 알아서 챙겨야 할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와 행정이 명확한 언어로 소통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때 비로소 시민의 신뢰가 유지될 수 있다.

 

건설의 언어를 다시 세워야 한다

 

문제는 진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도면 표기 기준의 국가 표준화가 시급하다. 현재 건설 현장에서는 설계사마다, 공종마다, 심지어 담당자마다 거더 번호·부재 명칭·방향 표기 방식이 제각각이다. G1이 어느 방향 기준인지, 번호가 어디서 시작하는지조차 도면마다 다르다. 국토교통부는 건설 도면 표기에 관한 국가 표준 지침에 따라 설계·감리·시공 전 단계에서 동일한 기준을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지도해야 한다. 공문 한 장도 행정 표준 서식에 맞춰 작성하는 데 수백억짜리 구조물의 도면이 작성자 개인의 관행에 맡겨져 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둘째, 설계·시공·감리 간 도면 해석 공동 확인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GTX-A 철근 누락 사태의 핵심은 설계자가 의도한 바와 시공자가 해석한 바가 달랐다는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착공 전 설계자·시공자·감리자가 주요 도면을 함께 검토하고 해석 내용을 서면으로 확인하는 공동 킥오프 절차를 법제화해야 한다. 해석 결과는 문서로 남기고 공사 전 기간 현장에 비치하도록 해야 한다. 말이 아니라 기록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셋째, 사고 발생 시 공식 발표의 용어 통일 프로토콜을 마련해야 한다. 서소문 고가 사고에서 서울시와 언론의 발표가 엇갈린 것은 사전에 합의된 용어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시 발주자·시공자·감리자·행정기관이 사용하는 부재 명칭, 위치 표기, 손상 유형 용어를 사전에 통일하고 언론 브리핑에서는 도면과 동일한 표기를 사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 사고 현장에서 G1과 G16이 뒤바뀌는 혼선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 프로토콜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넷째, 현장 기술인력의 도면 해석 교육을 정기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아무리 도면 표기 기준이 정비되더라도 현장에서 읽어내는 사람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시공사와 설계사의 직원, 현장 대리인, 안전관리자, 감리원을 대상으로 도면 해석 및 표기 기준에 관한 정기 교육을 의무화하고 이수 여부를 착공신고 서류에 포함시켜야 한다. 공문 작성 요령을 신입사원 때 배우듯, 도면 읽는 법을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반드시 검증받아야 한다.

 

건설의 기본은 명확한 설계와 정확한 해석에 있다. 도면의 작은 점 하나가 수백 톤 구조물의 생사를 가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장의 안전은 기술적 완성도와 행정적 투명성이 함께 보장될 때 비로소 확보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시민이 그 언어의 허점 위를 걷고 있다. 건설의 언어를 새롭게 정립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출발점이다. 더 이상 사고가 난 뒤에야 도면을 다시 펼쳐보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전문가 모임 대표, 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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