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선금 축소’에 ‘사업별 통장’까지 만들라니… 건설업계 “탁상행정”재정경제부, 지난달 30일 개정 ‘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 시행계약예규에서 ‘당해 계약만 위해 사용하는 선금전용계좌 제출’ 규정 업계 “심각한 행정 비효율 우려”… 의견 조회 나선 건설엔지니어링協
매일건설신문=조영관 기자 | 건설업계가 현금흐름 취약 구조 속에서 폐업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선금 축소’에 이어 ‘프로젝트별 선금 계좌 관리’라는 이중고에 맞닥뜨렸다. 업체당 수십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별 선금 계좌’를 개설·관리할 경우 발생할 행정비효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건설업계에서는 “행정절차와 비용만 초래하는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건설엔지니어링협회는 최근 협회 회원사에 ‘국가계약 시 계약단위별 선금전용계좌 의무 제출’과 관련한 의견조회에 나선 것으로 6일 확인됐다.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취합한다는 취지에서다.
앞서 재정경제부가 지난달 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 계약예규 제34조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상대자가 선금지급을 요청하는 경우 하수급인에 대한 선금지급계획을 포함한 선금사용계획서 및 당해 계약만을 위해 사용되는 선금전용계좌를 제출하도록 하여야 하며, 필요시 기한을 정해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약단위별 선금전용계좌 제출을 의무화한 것이다. 계약예규 시행에 따라 업체는 모든 국가계약 시 사업 건별로 별도의 전용계좌를 개설해 선금을 관리해야 한다.
협회와 엔지니어링업계는 이번 ‘계약단위별 선금전용계좌 의무 제출’에 대해 행정업무 과부하와 함께 자금운용 비효율성 등 측면에서 크게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엔지니어링업계의 한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규모가 작은 지역 건설엔지니어링업체도 보통 한 달에 10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데 프로젝트마다 통장을 만들라는 게 타당하느냐”며 “프로젝트별로 관리한다는 건 행정업무의 비효율만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엔지니어링협회의 한 관계자는 “건설엔지니어링업체당 많게는 수백 건의 프로젝트가 있는데 계약마다 계좌를 만들어 선금을 관리해야 한다면 엄청난 행정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라며 “기존에는 하나의 통장으로 전체 프로젝트를 관리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용했던 통장 계좌도 건건이 없애야 하느냐”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이번 ‘계약단위별 선금전용계좌 의무 제출’ 방안 시행은 ‘선금 축소’에 이은 후속조치다. 앞서 지난 2월 재정경제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선금 제도 합리화 방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선금 제도를 1997년 최대한도 70% 지급으로 규정한 이후 이를 유지해오던 가운데 코로나 펜데믹 시기 민생·경기 어려움 완화를 위해 한시적으로 80%, 100%까지 확대 지급을 운영하던 상황이었다. 2020년 5월부터 2024년 6월까지 계약금액의 80%, 2024년 7월부터 작년 12월까지는 100%를 지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선금 지급 확대 기조’는 작년 12월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시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가 있은 이후 급격히 축소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철도차량 제작사인 다원시스의 납품지연 문제와 관련해 “내가 보기에는 정부 기관들이 사기당한 것 같다”며 “선급금 70% 주는 규정을 바꿔라”고 했었다.
이후 재정경제부는 지난 1월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선금 지급 한도를 최대 100%에서 70%로 축소, ‘단계적 지급’ 내용을 담은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한 데 이어 후속조치로 지난 2월 ‘선금 제도 합리화 방안’을 내놓은 것이었다. 이에 따라 선금은 최초 지급 시 계약금액의 30~50%(의무지급률)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당시 재정경제부는 “원활한 계약 이행 등을 위해 발주기관이 계약금액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선금으로 의무 지급할 수 있다”고 했다. 발주기관 판단 하에 필요 시 최초 지급시에도 의무지급률을 초과하는 선금 지급 허용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는 “발주청이 허용된 재량을 발휘하지 않고 원칙 대응을 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정경제부가 ‘선금 관리 합리화 방안’의 하나로 내놓은 ‘계약단위별 선금전용계좌 의무 제출’에 대해 건설업계에서는 “정부가 건설업계를 두 번 죽이고 있다”는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현재 발주기관은 선금의 목적 외 사용 방지를 위해 필요시 선금사용계획서 제출 요청 및 확인을 시행하고 있는데도 선금전용계좌 의무화는 과도한 조치라는 것이다. 기존에는 하나의 선금계좌를 여러 계약에서 공동사용이 가능했지만, 선금 관리 합리화 방안에 따라 선금 계좌를 계약별로 구분해 당해 계약과 1:1로 대응·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선금 제도 합리화 방안에 대해 추후 지방계약법령 개정을 추진해 지방정부가 당사자인 계약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건설업계가 현금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행정업무 가중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건설엔지니어링협회 관계자는 “회원사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며 “시행 초반인 만큼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영관 기자 <저작권자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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