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산업재해 감축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과 실행 방향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예방 중심의 구조적 개선보다는 사후적 처벌과 규제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 두드러진다. 특히 정책의 실현 수단으로 AI 기반의 스마트 안전 기술 도입, 외부 컨설팅 확대, 교육 프로그램 강화 등이 제시되었지만 이는 산업현장의 복합적 위험 요인을 구조적으로 해소하기보다는 기술적 감시와 행정적 통제에 의존하는 방식에 가깝다.
스마트 안전기술, 현장의 현실을 대체하기에는 한계 존재 정부는 AI·디지털 트윈 기반 안전관리 서비스, 사물인터넷(IoT), 드론 등 첨단 기술을 통해 산업현장의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기술은 사고 예방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으며 위험 요소를 사전에 감지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일 뿐이며 이를 절대적 해결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로 많은 산업재해는 시스템이 감지하지 못하는 순간의 판단 오류, 작업자의 위험 감수 행동, 조직문화에 따른 무리한 작업 강행 등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고소작업 중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는 사례는 단순한 규정 위반이 아니라 공기 압박과 작업 효율을 중시하는 현장 분위기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이러한 행동은 AI가 감지할 수는 있어도 그 원인을 제거하거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기술은 ‘보조적 예방’일 뿐,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핵심 수단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규제와 처벌 중심의 접근, 예방보다 사후 대응에 머물러 이번 대책은 법적 처벌 강화, 감독기관의 권한 확대, 안전관리 미이행 시 경제적, 형사적 제재 강화 등 규제적 요소가 강조되어 있다. 이는 사고 발생 이후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사전예방보다는 사후 대응에 가까운 접근 방법이다. 특히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건설현장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실질적 예방 효과를 갖기 어렵다.
더욱이 현장 근로자는 고용 불안과 조직 내 권한 부족으로 인해 위험을 인지하더라도 이를 제기하거나 개선을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작업중지권과 자율점검권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를 행사하기는 어려운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 처벌과 규제만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불안전한 행동을 유발하는 제약조건과 환경을 제거하는 것이다.
불안전한 행동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접근 부족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은 단순한 개인의 실수나 태만이 아니라 조직문화, 공기 압박, 생산 압박, 고용 불안, 교육의 형식화 등 복합적인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이러한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 수립’이라는 문구는 등장하지만 구체적인 참여 방식이나 제도적 보장 장치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안전보건교육 역시 현장과 무관한 형식적 내용으로 반복되며 근로자의 자율적 참여는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교육은 ‘법적 의무 이행’으로 전락하고 실제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근로자의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책에서는 충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람 중심의 예방으로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산업현장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스마트 안전기술과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현장 노동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정책 설계와 위험성 평가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작업중지권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고용 안정성과 권리 행사에 대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형식적 교육을 탈피하여 현장 중심의 사례 기반 교육을 통해 행동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넷째, 생산성과 공정 중심의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조직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다섯째, 근로자가 위험을 제기하거나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성과 조직 내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건설안전은 기술과 규제가 아닌 ‘사람 중심의 예방’에서 출발해야 한다. 작업자의 행동은 단순히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변화시켜야 할 핵심 요소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계기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참여 중심의 정책 설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고 감소는 물론이고 진정한 의미의 ‘노동안전’이 실현될 수 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전문가 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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