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행정법규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과 행정제재의 차이

이승욱 변호사의 건설법률이야기 - ⑯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4/11/21 [13:28]

[기고] 행정법규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과 행정제재의 차이

이승욱 변호사의 건설법률이야기 - ⑯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4/11/21 [13:28]

▲ 이승욱 건설전문 변호사  © 매일건설신문


건설 분야와 관련하여 건설산업기본법, 산업안전보건법,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다수의 법률에 규제조항이 존재하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 또는 징역형 등의 형사처벌을 받거나 이와 별도로 영업정지나 과징금 등 행정제재를 받을 수 있다. 형벌의 경우 원칙적으로 고의가 인정되어야 하고, 과실은 과실범을 처벌한다는 특별한 규정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행정법규에는 대부분 고의범을 처벌하고, 과실범 처벌규정을 명시적으로 두고 있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다수의 구성원에 의해 업무가 이루어지는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구성원 중 누구에게 고의를 인정할 수 있을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만일 구체적 행위자가 명백한 경우라면 그 행위자 개인에게 고의를 인정할 수 있겠으나 기안자, 중간결제자, 최종결제자를 통해 여러 단계를 거쳐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실제 시공은 현장에서 현장소장, 현장근로자 등에 의해 이루어질 경우 누구에게 고의를 인정하여 처벌할 것인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표이사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특정하여 기소하는 것이 간단한 수 있겠으나, 대표이사가 실제 결제를 하지 않았거나 결제를 한 경우라도 위반행위의 경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표이사의 고의가 부정되어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대표이사가 아니라 실제로 업무를 담당한 기안자, 중간결제자 등을 기소할 경우 최종 결제권자가 아닌 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의 의문이 발생한다. 그래서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행정법규 위반에 따른 형사절차와 관련하여 다수의 구성원 중 누구를 책임자로 선정하여 기소할 것인지는 수사 및 기소단계에서 중요하고, 실제 소송에서는 피고인으로 기소된 실무담당자 또는 대표이사에게 고의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행정법규위반에 대한 고의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 과실범 처벌규정이 없음에도 과실을 문제 삼아 형사처벌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 된다. 판례는 행정상의 단속을 주안으로 하는 법규라 하더라도 명문규정이 있거나 해석상 과실범도 벌할 뜻이 명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법의 원칙에 따라 고의가 있어야 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원칙적으로 고의가 있어야 하지만, 과실범 처벌규정이 없음에도 해석상 과실범도 벌할 수 있다는 뜻이 명확한 경우에는 처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대법원 85도108 판결). 

 

판례는 법정의 허용기준을 초과하는 배출가스를 배출하면서 자동차를 운행한 행위로 기소된 사건에서 대기환경보전법상 고의범 처벌규정만 있을 뿐, 과실범 처벌규정이 없음에도 대기환경법상의 취지가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한다는 점을 실제로 인식하면서 운행한 고의범의 경우는 물론 과실로 그러한 내용을 인식하지 못한 과실범의 경우도 함께 처벌하는 규정이라고 판단한 바 있는데(대법원 92도1136 판결), 이에 대해서 죄형법정주의와 권력분립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의 또는 과실을 엄격히 요구하는 형사책임의 원칙이 행정처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가 문제되는데, 판례는 행정법규 위반에 대하여 가하는 제재조치는 행정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행정법규 위반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착안하여 가하는 제재이므로, 위반자의 의무해태를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반자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부과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2두5177 판결).

 

형사처벌은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어야 가능하나 행정제재는 원칙적으로 고의 또는 과실이 없더라도 가능하고, 예외적으로 의무해태를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제외되므로 행정제재의 대상범위가 형사처벌의 대상범위보다 넓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공사수주나 공사계약의 체결 등에 관한 포괄적 권한을 위임받은 건설회사의 이사가 건설산업기본법을 위반하여 건설업등록증을 대여한 경우 회사가 뒤늦게 그 위반행위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건설업등록 말소의 행정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02두5177 판결). 행정법규 위반의 경우 형사처벌과 행정제재를 확대하는 것이 행정목적의 달성에 유리할 수 있겠으나 형사처벌이 부당하게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행정법규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에 있어 책임주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될 필요가 있다.

 

 

/이승욱 변호사

 


 

☞ 매일건설신문은 805호(4월 8일자 지면신문)부터 격주로 이승욱 변호사의 ‘건설법률이야기’를 연재한다. 이승욱 변호사(49)는 연세대 법학과, 북경대 법학대학원 석사(LLM)를 전공하고, 경일대 경찰행정학과 특임교수로 강의했다. 이 변호사는 법무법인 산경, 법무법인 고원 등에서 건설관련 자문·소송을 수행했다. 이번 기고를 통해 건설업 분쟁을 사전 예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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