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에 줄 돈 건설현장에 투입했다면 안전수준 더 높아졌을 것”[창간 27주년 기획] 안전에 안전을 더하면 경쟁력이 된다 - 전문가 인터뷰건설안전제도 실효성 제고 나선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 기존 산안법은 공기·예산 결정하는 발주자·경영자에 책임 안 물어 중처법에도 경영책임자는 안전책임자라는 ‘바지사장’ 내세워 면피 “징벌적 손해배상 부과하되 경영자 구금하는 건 없앨 필요 있어”
[매일건설신문 조영관 기자]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컨설팅을 받는다고 로펌에 갖다 줄 돈을 현장 안전에 투입했다면 지금보다 안전이 한 단계 올라갔을 겁니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돼 1주년을 맞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은 “경영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과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면 작업 중 생명을 잃은 근로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이제 사회는 더 이상 인명을 담보로 한 생산이나 사업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홍섭 회장은 40여년간 건설산업과 건설안전을 연구한 학자다. 현재 군산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내고 있다. 안 회장은 올해 ‘건설안전혁신포럼’을 구성하고 지난 3일 코엑스에서 첫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 주제는 ‘건설안전 제도·정책의 혁신과제와 방향’이었다. 포럼은 올해 건설안전을 주제로 정기 세미나와 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안홍섭 회장은 포럼 구성에 대해 “지난 40여 년간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기술진흥법이 시행됐지만 건설 산업의 안전 책임 제도가 명확하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았던 것이고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다”며 “산안법과 건진법에는 여러 가지 안전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런 활동들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26일 개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주년 토론회’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법 적용 대상 기업의 중대재해 사망자 수는 오히려 법 적용 전보다 8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업들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인력 보강이나 예산 투자보다는 경영책임자 처벌을 피하기 위한 법률 컨설팅 수요가 확대된 것으로 조사됐다. 무엇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수사에 착수한 총 229건의 사건 중 52건(22.7%)의 사건을 처리돼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안홍섭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취지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실무자 차원으로 한정된 안전책임 의무를 경영 책임자까지 확장해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지운 것”이라며 “경영자에 대한 안전 책임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는 굉장히 높게 본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그러면서 “산안법에서 일개 직원일 뿐인 건설현장 소장만 처벌하는 한계를 극복했으면 중처법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성급하게 시행된 측면이 있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법이라는 것이다.
안홍섭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문제로 책임주체의 정의와 관련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이라는 문구를 꼽았다. 안 회장은 “‘또는’ 이라는 문구를 넣으면서 안전사고 시 경영책임자로 하여금 안전책임자라는 ‘바지사장’을 내세워 면피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이는 경영의 모든 책임은 CEO에게 있다는 경영의 제1원칙을 무시하고 안전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홍섭 회장은 또 중대재해처벌법의 집행 해석상의 결정적인 실수도 꼬집었다. 노동계에서 지적하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표현이다. 안 회장은 “고위험 작업일수록 특수하고 전문적인 업체에 도급을 줘야하는 것”이라며 “고위험 작업일수록 전문 업체에 적정임금을 주고 외주를 해야 하는 것이고,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위험의 외주화’는 잘못된 표현이고, ‘위험의 전가’라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홍섭 회장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해서는 ‘공장법’이라고 정의했다. 공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는 공장장이 직원을 책임질 수 있고, 대부분 상시근로자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건설 산업의 경우 기존 산안법 상에서는 재하도급사가 일용직 근로자를 고용해 그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직접 계약을 한 재하도급사가 책임을 지는 ‘처벌의 한계’가 따랐다는 것이다. 발주자와 경영자에게 안전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것이라는 취지로, 건설현장 안전사고 시 발주자에게도 안전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공사기간과 예산을 결정하는 발주자와 경영자에게는 책임을 하나도 묻지 않았던 것으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의 맹점이었다는 것이다. 안홍섭 회장은 “외국의 경우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회사가 부도날 정도로 벌금을 때린다”며 “우리는 징역을 살게 하는데, 벌금을 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처럼 경영에 치명상을 주는 정도로 부과하되 경영자를 구금하는 건 없앨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홍섭 회장은 ‘건설안전혁신포럼’을 통해 기존 건설기술진흥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잘못된 내용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다는 목표다. 안홍섭 회장은 “안전한 건설을 만들면 정의로운 건설이 되고, 모두가 행복한 건설 산업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포럼은 안전한 건설, 정의로운 건설, 행복한 건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관 기자 <저작권자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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