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99話’

열차의 좌측통행과 우측통행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2/09/12 [08:17]

[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99話’

열차의 좌측통행과 우측통행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2/09/12 [08:17]

▲ 남태령~선바위 간 구간                            © 매일건설신문

 

일본인 에구치(江口寬治)의 ‘철도 회고록’에 서울의 옛 전차 통행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조선에서는 전차도 보행자도 오늘날에는 모두 좌측통행으로 되어있으나 대정 10년(1921년)경까지는 우측통행이었다. 내지(일본)도 만주도 좌측통행으로 되어있는데 조선만 우측통행이었다. 그간 여러 과정은 있었으나 불합리하고 불편한 일이라며, 당시 총독부 철도부장 와다이치루(和田一郞) 박사는 좌측통행으로 변경을 위해 조사와 협의를 거쳐 대정 11년(1922년)부터 좌측통행으로 변경하였다. 이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당시로서는 일대 영단이었다.”

 

이 내용에서 알게 된 것은 당시 조선에 최초로 전차가 부설된 것은 1898년 1월 26일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된 후 미국인 Henry Collbran에 의해 1899년 5월 4일 최초의 전기철도가 동대문과 흥화문 사이에 개통될 때 우측통행하는 미국의 도로교통에 따라 우측통행으로 시작한 것으로 판단되며, 영국의 영향을 받은 일본사람이 좌측통행에 익숙해져 변경한 것으로 추정된다.

 

철도의 통행 방향은 최초 마차의 통행패턴에 따라서 마차가 발달한 미국과 유럽권에서는 우측통행을 선택했고, 영국 등 소형마차를 사용한 나라에서는 좌측통행을 선택함에 따라 철도 통행 방향이 마차의 통행 방향을 따라 결정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대부분 최초 철도 부설 당시의 여건에 따라 통행 방향이 정해졌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영국의 영향을 받아 좌측통행을 하는 일본이 철도를 부설하면서 좌측통행이 정해진 것으로 도로교통과는 관계가 없었으나 수도권 전철 공사과정에서 서울시 측에서 도로교통과 연계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철도청 선로와 직결되는 1호선의 경우 좌측통행으로 협의했으나 과천선(현 4호선)의 경우 철도청구간은 좌측통행을 하지만 서울시 구간은 우측통행을 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당시 과천선 부설공사에서 금정~인덕원 간은 철도노선의 연장구간으로 1993년 1월 15일 좌측통행 선로로 개통되었으나 인덕원~남태령 구간은 남태령부터 우측통행을 결정한 서울시 구간으로 철도청과 서울시 간의 협의가 지속되었으나 서울시 구간은 우측통행이어야 한다는 서울시의 주장에 따라 철도청의 최종구간인 선바위역과 서울시의 시작 구간인 남태령역 간에서 통행 방향을 변경할 것을 확정한 후 사당~남태령 간 우측통행의 선로는 맞은편의 철도청 좌측선로와 연결했으며, 선바위역까지 좌측통행한 선로는 남태령역 우측선로와 연결하기 위하여 남태령~선바위 간 지하터널 밑에 꽈배기 형태의 지하터널을 구축하여 1994년 4월 1일 일명 꽈배기 굴이 개통된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서울시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하여 우측통행을 결정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필자의 기억으로는 당시 일제의 잔재 이야기가 아닌 우측통행인 도로교통과의 연계 이야기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그 후 부설된 2, 3, 5, 6, 7, 8, 9호선과 인천 1호선, 인천 2호선, 우이, 의정부, 용인 경전철과 김포골드라인 등 도시철도선로는 우측통행 선로이며, 좌측통행 선로는 한국철도공사 소속인 1호선, 수인분당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공항철도, 경강선, 서해선 등 기존 철도노선과 연계되는 전철 선로다.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100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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