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계가 대형공사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사업과 관련해 ‘수의계약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최근 철도와 도로·항만 등 주요 턴키사업들이 유찰되거나 유찰이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발주기관에서 금단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수의계약’이 고개를 빼꼼 쳐드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모두 이 수의계약에 대해 쉬쉬하고 있다.
기자가 최근 턴키사업 유찰과 관련해 둘러본 건설업계는 ‘풍요속 빈곤’에 빠져 있다. 대형 SOC 사업이 잇달아 발주되고 있지만 원자잿값 상승 등에 따른 낮은 사업성에 입찰시장은 뜨뜻미지근하다. 유찰 사업이 늘어나면서 발주청은 발주청대로 속을 태우고, 건설사는 건설사대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그나마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고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그런 가운데 공공기관의 ‘발주공고 허송세월’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수의계약’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수의계약’은 대표적으로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27조에 규정돼 있다. 발주청은 경쟁입찰을 할 때 2인 이상의 유효한 입찰자가 없거나 낙찰자가 없을 경우 재입찰에 부칠 수 있다. 대형공사 등 국가 발주사업에서 경쟁입찰을 실시했지만 입찰자가 1인뿐인 경우 재공고입찰을 실시하더라도 입찰참가자격을 갖춘 자가 1인밖에 없음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수의계약에 의할 수 있다. 요건을 갖추면 발주청의 재량에 따라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발주청은 이 같은 수의계약 조항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본지 취재 과정에서 한 발주기관 관계자는 “업계 유착 눈초리에 수의계약은 엄두도 못 낸다”며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수의계약이 마치 입에도 올리면 안 되는 ‘봉인된 괴물’이라도 되는 듯했다.
또한 발주청에게는 ‘수의계약’이 가까이 할 수 없는 괴물로 치부되지만 건설사들에겐 ‘계륵’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수의계약 논의를 위한 수의시담 시 낮은 사업비 때문이다. 한 공공기관 계약담당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설계해서 하나의 사업에 들어가는데, 보통 금액을 사업비의 100%에 근접해 가격을 투찰한다”면서 “그런데 수의계약에서는 절대 그 가격을 줄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의계약 시 건설사와 가격협상을 하지만 사업비를 90% 이상 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수의계약은 발주청의 ‘적극행정의지’와 ‘적정 사업비 보장’이 좌우할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도 반복되는 턴키사업 유찰로 SOC 구축이 늦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발주기관들이 ‘수의계약’이라는 정책적 기술을 발휘할 때다. 수의계약을 ‘발주공고 허송세월’을 막고 국민들의 SOC 이용 편익을 높이는 ‘다크호스’로 만들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봉인된 괴물’로 남겨놓을지는 발주청의 재량에 달렸다.
/홍제진 부국장 <저작권자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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