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96話’

안성선 이야기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2/08/03 [12:14]

[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96話’

안성선 이야기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2/08/03 [12:14]

 

▲ 1927년 안성선(사진 왼쪽)과 1960년대 차장 시절(왼쪽 원안) 및 평택부발선 약도                                © 매일건설신문

 

최근 보도자료에서 평택출발 안성 경유 부발에 이르는 평택부발선이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됨에 따라 안성시는 옛 안성선 철교 위에 철도문화 공간으로 '안성역 스테이션 100'을 조성한다는 발표를 보고 옛 안성선을 추억해본다.

 

안성선 이야기는 2020년 10월 26일의 본지 철도역사 이야기 ‘제54화’에서 소개되어 일부 중복되는 내용이 있겠지만 1988년 말 사라진 안성시의 철길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1960년대 열차의 차장으로 승무했던 안성선 열차에서 있었던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지난 이야기를 소개한다.

 

본래 안성선은 1919년 9월 30일 조선경남철도(주)가 천안~안성 간에 경기선이라는 명칭으로 부설 허가를 받아 1924년 12월 11일 착공하여 1925년 11월 1일 천안-석교-직산-고지-미양-안성 간 28.4km를 개통시킨 후 안성에서 여주까지 연장 승인을 받고 1927년 9월 15일 장호원까지 개통시켰으며, 당시 직산역은 직산면 소재지 주민들의 철도부설 탄원으로 직산면과 가까운 역명을 직산역이라는 이름으로 개통하였으나 1934년 12월 경부선 천안~성환 사이에 직산 간이역이 신설되자 본래 지역 이름을 따라 입장역으로 변경하였다.

 

안성선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천안~안성 간 경기선 선로가 개통되면 직산 금광(金鑛)의 잔토(殘土) 60만 톤은 일본으로 이송을 결정했다’는 1924년 10월 9일 자 시대일보 기사를 읽다 보니 예전에 ‘안성선이 폐지되면 입장역장 관사를 매입하여 일본인이 관사 지하에 묻어둔 금을 찾아내겠다’며 벼르시던 선배 철도인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기도 한다.

         

경기선 선로는 태평양전쟁 중 물자 부족으로 어려워하던 일제가 기존 선로를 철거하여 전쟁에 시급한 용도로 전용하기 위하여 1944년 8월 수립한 ‘영업선 기타 철거 전용계획’에 따라 1944년 12월 안성~장호원 간 41.8 km 구간의 선로를 철거하여, 천안~안성 간 선로만 남게 된 후 1946년 5월 10일 미 군정령 제75호에 의거 국유철도에 편입되었으며, 1947년 안성~장호원 간의 부활을 위한 ‘경기선 부활 기성회’를 조직하고 주민운동을 전개한 적도 있었으며(1947. 02. 18일 한성일보), 1955년 9월 1일 ‘안성선’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60년대 차장으로 열차 승무 중 필자 기억에 남은 안성선은 당시 천안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으며, 기동차 2량으로 편성된 천안행 아침 통근열차에는 항상 학생들로 만원을 이루어서인지 입장~천안 간의 고개를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오르다가 서고, 다시 오르다가 서기를 반복하다가 정지하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통학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차에서 내려 함께 열차를 밀어 올리고, 고개 위에 올려진 열차는 학생들이 모두 승차한 것을 확인한 차장의 전호에 의해 다시 출발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던 일, 그리고 현충일이면 국군 묘지 참배를 위해 승차한 월남전 전사 국군의 유족들 모습을 보면서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친구들을 생각해 보던 기억이 남아있다.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97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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