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93화’

전쟁과 철도인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2/06/20 [10:24]

[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93화’

전쟁과 철도인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2/06/20 [10:24]

▲ 순직부원의 비 참배 모습                                    © 매일건설신문

 

어느덧 6.25 전쟁 발발 72주년이 되었다. 철도 주요 연표를 찾아보면 1950년 7월 24일에 ‘철도 종사원에 대한 군 징용에 관하여 특별 조치’라는 기록과 7월 30일에는 ‘국회로부터 교통부 종사원에게 감사 메시지 전달’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때는 철도청 설치 전 철도를 교통부에서 운영하던 시기로 북괴의 남침으로 교통부가 대구로 이동되고 수송본부가 부산에 설치되었던 시기로 철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시 기록을 찾아본다.

           

1953년 교통부에서 발간된 ‘한국교통동란기’에 의하면 당시 미 8군단 제3군 사령관은 “이번 전쟁은 철도전쟁이라 할 만큼 어떤 작은 전투라도 철도수송 없이는 수행이 어려웠으며, 모든 한국철도 종사원은 우리가 예측하지도 못한 용감한 행동을 감행하였기에 철도는 군의 제1의 무기이며, 민주 방위 제1의 무기”라고 하였으며, 신익희 국회의장 외 의원 일동 명의의 감사장을 보내왔으나 철도 종사원을 총괄하는 교통부는 인사 행정상 애로가 극심하였다. 

 

적군에 밀려 후퇴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철도 종사원이 징집되었으며, 거제지구에서는 600여 명이 집단으로 징집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물론 국가비상사태에 국민으로서 국토방위 임무는 당연한 의무지만 군사수송도 전투행위와 다를 바 없는 형편에서 군 당국은 교통종사원에 대한 특별 조치가 절실하게 되자 국방부 장관은 교통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다음과 같은 특별 조치를 하달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에 기록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1년 5월까지 전쟁 중 본부 1명, 서울철도국 18명, 대전철도국 74명, 부산철도국 27명, 순천철도국 16명, 안동철도국 11명, 서울공작창 1명, 부산공작창 3명, 철도건설국 2명, 삼척운수국 2명 등 155명의 순직자 명단은 19세 3명을 포함하여 대부분 20대의 철도인 들이었으며, 1950년 7월 미 제24사단장 윌리엄 딘소장 구출 작전 중 순직한 대전운전사무소 29세의 김재현 기관사 이름도 여기에 남아 있다.  

 

필자 철도청 근무 시 현충일에 직원들과 함께 참배했던 이원 성역(순직철도인 위령원)에는 한국전쟁 중 순직한 287명을 포함한 순직철도인 2,21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철도는 빠른 속도의 육중한 열차가 달리는 일터이다 보니 평소에도 순직자와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직장으로 교통부가 용산에 소재했던 1959년 철도 60주년을 맞아 전 부원의 뜻을 모아 교통부 후원에 세웠던 ‘순직부원의 비’를 1982년 철도청 이원 묘포장(苗圃場)으로 이전하고, 개인별로 다른 종교적인 배경을 배려하여 영령 위패를 봉안한 극락정사와 성모마리아상 및 십자가상을 건립하였으며, 매년 현충일 유가족과 철도직원들이 함께 모여 순직 영령을 추도하고, 명복을 비는 철도인 들의 성역이다.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94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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