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의 남미 국가 페루에는 ‘수치의 장벽’이 있다. 페루 리마 시를 가로지르는 높이 3미터, 길이 10km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다. 이는 리마시의 극심한 빈부격차의 상징이다. 장벽을 사이에 두고 빌딩숲과 척박한 모래언덕에 수도나 전기 조차 들어오지않는 판자촌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지난 14일 ‘도시공간정보포럼’과 ‘공간정보기술사 합동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정부 및 산·학·연의 공간정보 전문가들은 지적(地籍)제도 발전 방안, 3차원 공간정보 구축방향, 스마트시티 구현을 위한 디지털 트윈 구축 기술 등 국내 공간정보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가졌다.
이날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이 ‘수치의 장벽’이다. 공간정보 구축에 대한 국가와 민간의 역할과 관련해 ‘수치의 장벽’이 사례로 거론됐다. 공간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가상모델)’ 기술로 스마트 시티를 확대할 수 있고, 이는 곧 도시 균형 발전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 공공성의 바탕에 국가 공간정보가 있다는 취지다.
“지도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산업이다. 만약 지도산업을 민간 주도로 구축하게 된다면 일부 민간 기업에 의한 독점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가 지도의 기본 틀을 만들고 민간이 이를 가져다 업드레이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이 자율주행차 운행 및 상용화를 위해 올해까지 모든 고속도로를 포함해 전국 도로의 약 6천km 구간의 정밀도로지도를 구축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와 민간의 공간정보에 대한 역할과 관련해 공간정보 산업계의 관계자가 한 말이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4월 26일 정밀도로지도를 효율적으로 구축·갱신하기 위한 협력체계를 구성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민관이 협력해 자율주행차용 정밀도로지도를 효율적으로 구축한다는 목적이다. 업무협약에는 완성차업계, 이동통신업계, 지도제작업계, IT·전자업계의 14개 기업과 관련기관이 참여했다.
자율주행차 기술과 관련해 해외 민간기업들 사이에서 기술 우위 선점을 위한 각축전이 한창인데, 자율주행차 운행을 위한 정밀도로지도 구축에는 국내 기업들도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는 정밀도로지도의 구축을 두고 정부와 민간의 역할 설정이 화두인 상황이다. 앞서 협의체 구성은 그 일환이다.
이와 관련해 공간정보 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일부 특정 기업이 정밀도로지도를 구축할 경우, 구축된 데이터에 대해 절대 공개를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 주도로 정밀도로지도를 구축하다가 기업이 사업을 접었을 때에는 어떻게 되느냐”며 “도시보다는 시골에 자율주행기술이 필요하고 지도는 무엇보다 약자편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밀도로지도를 비롯한 공간정보 구축에는 국토지리정보원을 필두로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는 국가의 기본적인 인프라 관리를 위한 핵심이다. 안보와도 직결되는 만큼 국가정보원은 내부 보안규정에 따라 공개와 비공개 자료 여부를 구분하고 있다. 아울러 도시 균형 발전을 위한 필수 재료다.
국가 주도의 공간정보 기술 개발 및 사업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머뭇거리면 자칫 눈에 보이지 않는 ‘수치의 장벽’이 국내에도 세워질지도 모른다.
/조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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