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광복절 74주년 기념]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제27話」“폐망하면서도 발악했던 일제의 만행”최초 9월18일 철도의 날 제정의 계기가 되었던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의 발발에 이어 1941년12월 7일 일제가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 태평양함대의 기지인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미 공군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1945년 8월15일 일제가 항복함에 따라 막을 내렸고, 36년간의 일제 치하를 벗어난 우리는 이날을 법정기념일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다.
필자는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이야기 순서를 벗어나 일제가 전쟁 막바지에 철도에는 어떤 일을 했었는지 짚어보려 한다.
위 극비문서는 1942년 6월 5일 일제가 태평양 전략 요충지인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공군에 폐퇴하여 패전이 짙어진 가운데, 운행 중인 한국철도의 일부 노선을 철거하여 군수물자로 전용하려는 계획으로 국유철도 경북선 점촌~안동 간은 1944년10월 1일부터, 광주선 광주~담양 간 및 사설철도 금강산전기철도 창도~내금강 간은 11월 1일부터, 경기선 안성~장호원 간은 12월 1일부터 철거하고, 협궤선 함평~학교 간 함평궤도, 수중공업 전용철도, 신흥철도 풍상~장풍 간 및 조선제철의 동해선 배양~북평 간을 철거 대상에 포함시키고, 충남선(지금의 장항선) 홍성~장항잔교 간은 우선 철거작업 대상에서 보류한다는 구체적인 계획문서다.
여기서 특이한 노선은 경북선이다. 경북선은 본래 조선철도주식회사가 1924년10월 1일 김천~상주 간 개통을 시작으로 1931년10월15일 예천~안동 간 개통으로 김천~안동 간 118.1㎞의 경북선이 개통되어 당시 김천, 아천, 옥산, 청리, 상주, 백원, 양정, 함창, 점촌, 용궁, 개포, 유천, 예천, 고평, 호오, 풍산, 오동, 안동역 등 18개 역이 운영되었다. 당시 시각표에 풍산과 안동을 경북풍산, 경북안동 등으로 표기한 것은 함경도의 풍산, 중국의 안동(지금 단둥의 옛 이름)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역명을 특정한 것이며, 1940년 3월 조선총독부는 사설철도 경북선을 매수하여 직영을 시작했던 노선이었다.
경북선 점촌~안동 간 58.3㎞가 위 계획에 의거 철거된 후, 대한민국정부는 점촌~안동 간 구 노선을 폐지하고, 점촌~예천~영주를 연결하는 새로운 경북선 노선을 1966년10월10일 완공함에 따라 오늘날의 김천~영주 간 115.2㎞ 경북선이 새롭게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1945년 9월15일 주한 미 정치고문 H. Merrell Benninghoff가 미국무부장관에게 보고한 “조선은행권 통화 발행고는 3월 35억 엔에서 9월12일 75억 엔으로 증가하여 임금과 물가는 통제를 벗어나 하늘로 치솟았으며, 주한미군이 8월15일 수준으로 물가를 고정시키도록 지시는 받았지만, 이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미 잘 자리 잡은 암시장을 강화시킬 뿐입니다”는 내용과 1945년 9월28일자 매일신보 “일제는 항복 직전부터 경제 교란을 위하여 수십억의 조선은행권 남발” 기사에서 조선경제 질서의 교란을 위한 단말마적인 발악이라는 보도내용에서 일제는 폐퇴하면서도 우리사회의 혼란을 부추키고 떠나, 천인공노할 일제의 만행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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