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간정보 산업의 주춧돌인 항공측량 기업들이 최근 혹독한 시기를 겪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항공촬영과 서울시 상수도 DB(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에서 수년간 담합한 혐의로 과징금은 물론 검찰에 고발돼 처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법원 판결 후 내려질 국토교통부의 행정제재 여부다. 가담 정도에 따라 정부 사업의 입찰이 제한돼 말 그대로 손가락만 빨아야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수십 년간 국가 공간정보를 구축해온 대표 항측사들이 좌초 위기에 놓이자 설립된 지 10년 안팎의 신생 항측 기업들은 주요 항측사들의 담합 적발로 ‘호재’를 바라는 눈치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누군가의 불행은 누군가의 행복이 된다.
불쌍한 건 직원들이다. 기자가 만난 관계자들은 항측사들의 담합과 관련해 직원들부터 걱정했다. “그동안 오너들은 돈을 많이 벌어 빌딩도 세우고 그랬다. 법원에서 직원들에게 징역을 내려봤자, 오너들은 꿈쩍도 안한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했는지 지난 14일 서울시 상수도 담합 결심공판에서 일부 회사의 대표들은 “직원들에겐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판사는 “조사 때 대표들은 잘 나오지 않더라”며 응수했다. 정작 조사할 때는 책임회피를 하면서 직원을 사지로 내몰다가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야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얘기다. 항측사들은 일부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상대편에게 화살을 돌렸다.
지난달 20일 국토지리정보원 발주 항공촬영 사업 담합 건의 1심 판결은 ‘과도한 처분’이라는 게 산업계의 대체적인 평이다. 과도한 판결에는 일반측량 업체들이 주도해 담합 항측사들을 강하게 처분해달라며 제출한 탄원서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항측사의 한 변호인은 “단순히 처벌을 해달라는 수준이 아니라 (일반측량업체들이) 같이 경쟁해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데, 담합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식으로 썼다”면서 “형식만 탄원서지 내용으로 보면 거의 무고(誣告)에 가깝다”고 말했다. 항측사들은 모두 항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재 대상 항측사들은 바짝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에 수십 년간 몸담았던 공간정보 기술자들이 취업전선에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의 한 대표는 “현재 이들 퇴직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회사가 없는 상황에서 일부 기술자들의 자격증 대여로 산업계가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말 어쩌다 공간정보 산업계가 이 지경까지 왔나. 항공측량 업체와 일반측량 업체의 뿌리 깊은 반목은 차치하더라도, 이제는 같은 항측사들끼리도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 한편의 모래성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철저히 뭉치는 일반측량 업체들을 항측사들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항측 기업들의 공동대응 부재가 그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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