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사·주도자에 각각 벌금 1억·5천만원, 징역 2년 구형
“대표들이 자진해서 직원들이 수사 받는 것을 막았더라면 직원들이 처벌을 안 받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대표들은 수사를 잘 안 받는다. 그런 부분은 좀 안타까웠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서울시 발주 ‘상수도 지하 배관망 DB(데이터베이스) 정확도 개선 사업(GIS 사업)’ 형사고발 결심공판에서 이성은 판사는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6개 항공측량 기업의 대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부 대표들이 함께 고발된 직원들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자 꺼낸 말이다.
검찰은 이날 중앙항업·새한항업·한국에스지티에 각각 벌금 1억원, 삼아항업·범아엔지니어링·신한항업에는 각각 벌금 5천만원, 담합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모씨, 신모씨에게는 각각 징역 2년, 이모씨에게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이날 공판에서 항측 6개사는 각각 자신들의 혐의들에 대해 일부 인정하고 부인하면서도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일부 업체는 적극 방어에 나섰다. 특히 자신들의 혐의를 벗기 위해 상대 기업을 향한 공격도 난무했다.
반대신문 증인 신청은 거부돼
이들 항측 6개사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시 GIS 사업 입찰에서 2~3개 지구별로 낙찰 예정자와 들러리 사업자를 사전에 합의하고 실행한 혐의로 지난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검찰에 고발됐다.
당초 이번 담합의 주도사는 새한항업·공간정보기술·중앙항업 등 3개사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에서 공간정보기술은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통해 고발을 피했고, 결국 새한항업과 중앙항업이 담합 혐의에서 쟁점의 키를 쥐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중앙항업은 그동안 수사과정에서 새한항업 측이 보인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했다. 당초 이번 사업의 입찰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 새한항업의 신모씨와 서울시 담당 공무원을 증인으로 신청해 중앙항업의 가담정도가 부풀려져 있는 점을 반박해 증명하겠다는 의도다. 재판이 책임 떠넘기기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사실관계와 다른 부분에 대해 반대신문을 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중앙항업 측은 “(담합으로 인한)피해금액을 추산해 서울시를 상대로 공탁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말했다. 일부 혐의를 인정한 후 선처를 호소한 것이다.
삼아항업은 “업무 특성상 2~3개 업체가 공동수급체를 구성하기 때문에 경쟁관계와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보였던 공간정보기술의 제안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경영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범아엔지니어링은 “담합에 대해서는 많은 대법원 판례들이 있고, 특히 합의에 대한 엄격한 판단을 요구하는 판례도 있다”면서도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서북지구 말고 나머지 지구에 대해서는 사전에 합의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적극 방어에 나선 신한항업
이번 공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혐의를 반박한 곳은 신한항업이다. 신한항업은 “담합 주도 3개사 간의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신한항업 측은 “담합을 주도한 3개 회사가 업계의 강자로 군림해왔고, 2009년부터 2014년까지 3개 회사가 주간사로 사업을 낙찰받아왔다”면서 “2012년부터 과거의 실패를 통해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업체의 전략을 분석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면서 매년 경쟁적으로 입찰에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담합주도 3사의 담당자들이 신한항업의 입찰참가 경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정위 및 검찰조사 당시 자사도 담합에 가담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진술한 것은 이 사건 사업과 관련된 시장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 신한항업을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담합 주도 3사에 화살을 돌렸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항공측량 기업들이 국토지리정보원의 항공촬영 입찰담합과 이번 상수도 담합 사건에서 초기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점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신들의 혐의를 벗기 위해 상대 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결국 모두에게 자충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항측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수도 배관망 사업은 위험한 작업인 만큼 입찰 시 최저가가 아닌 적정한 수준의 가격이 유지돼야한다”면서 “당시 상황에서 단순히 담합에 참가한 기업과 주도한 기업을 분리해야하고, 특히 해당 직원들이 구속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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