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註): 본지는 철도가 지닌 특별한 역사(歷史)성 즉 이 나라가 겪은 격변의 시대를 단순히 교통 운송 수단이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숨결 같은 존재이기에, 또 철도史가 잘못 알려진 보편적 오류들이 한국사 안에서도 많아, 철도교통문화협회 명예회장인 손길신 前 코레일 철도박물관장을 통해 바로잡는 동시에 철도역사의 관심을 고 취시키고자 연속해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지루한 역사이야기를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몇 가지 지난 이야기를 되짚어본다. 제 1화에서 경부철도 부설을 반대했던 정병하와 관련된 윤치호의 영문일기를 소개한다. 1898년 독립협회 회장에 취임하여 자주국권운동을 전개한바있고, 중국·일본·미국 유학을 다녀온 그는 18세인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간 쓴 일기를 남겼다.
그의 1895년12월13일(금요일) 일기 “李允用and 玄興澤 told me that on the fatal morning of 8th October, Her Majesty, hearing that Japs were rushing into her quarters, went down to the yard trying to escape. But 鄭秉夏, told her that the Japanese would not hurt her contrary to international law, and forced her to return to her apartments. If this is true 鄭 is a most damnable traitor the world has ever seen.”
제 2화 내용 중 “애당초 계획에 없던 싸릿재(Saalijy)역으로 불린 유현(杻峴)역이 추가 설치되어 오늘날의 동인천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라고 소개하였는데 ‘杻峴’의 ‘杻’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싸리 뉴’자로, 개통당시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에 ‘유현역’으로 소개한 것처럼 두음법칙에 따라 ‘유현’으로 읽어야 하나 굳이 한자 발음 ‘뉴현’이라 읽어, 발음이 어려워 역명변경 민원에 따라 공모한 역명이 ‘상인천역’과 ‘동인천역’이 응모됐다.
이후 1926년 ‘상인천역’으로, 1948년 다시 유현역, 1955년 오늘날의 ‘동인천역’으로 변경되었음에도 한자 ‘杻’를 ‘싸리 축’으로도 읽을 수 있어, 동인천역 최초 명칭을 ‘축현역’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웠지만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개최된 인천개항박물관 기획전 ‘미리 보는 경인철도 120년’에서 ‘유현역’임을 밝혀주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제3화에서 1898. 1.29일자 뉴욕주간지 "Harper's Weekly"에 소개된 인차철도(人車鐵道) 이야기다. 경인철도 부설 초창기 일본인 사업자가 경인철도를 따라 궤도를 설치하고 인차철도를 운영했다는 전언이 있을 뿐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당시 운행된 사실은 이 신문의 사진이 증명해준다.
인차철도 역사를 살펴보면 1907년 평양시가, 1912년 왜관역~낙동강 간, 1914년 경성~나남 간, 1915년 김제역~동진강연안 간, 등 많은 사례 중 특이한 인차철도는 ‘제주도순환궤도’로 김녕~제주~협재 간 57㎞가 부설되어 1929년부터 1931년까지 운행된 사실이며, 산지천 용진교 옆에 당시 도록고(궤도차) 운행기념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12話」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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