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註): 본지는 철도가 지닌 특별한 역사(歷史)성 즉 이 나라가 겪은 격변의 시대를 단순히 교통 운송 수단이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숨결 같은 존재이기에, 또 철도史가 잘못 알려진 보편적 오류들이 한국사 안에서도 많아, 철도교통문화협회 명예회장인 손길신 前 코레일 철도박물관장을 통해 바로잡고자 연속해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경부철도는 착공 3년 3개월만에 450㎞를 완공하여 1905년 1월 1일부터 초량~영등포간 운수영업을 개시하였으며, 1905년 5월25일 남대문역 광장에서 황실, 각부대신, 각국의 주한외교사절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개통식을 거행하였고, 식후 갖가지 여흥행사가 진행되어 흥을 돋우었다.
이날 주한 미국공사 Horace Newton Allen은 축사에서 ‘내가 프랑스 파리의 기차 안에서 차장에게 남대문역에서 내려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며 대륙철도와의 연결을 축원하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당시 부산~초량간은 바다와 영선산 때문에 도로개설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용두산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초량쪽으로 이전하게 되자 일본인 부산 거류민들은 초량까지 도로개설을 요구하였지만 대한정부가 철도공사 아닌 도로공사라며 승인을 거절하자 철도부설 재료운반용 도로로 용도를 변경하여 승인을 받아, 1902년12월 착공하여 이듬해 3월 준공하여 수많은 마차와 인력거가 부관연락선(부산항과 시모노세키항간 운행하는 기선)과 연락교통을 하게 되어 당시 ‘인력거길’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4월 1일 영업을 시작한 부산역은 1908년 3월 준공한 가역사(假驛舍)였으며 이날부터 잔교선(棧橋線)연장과 잔교 상옥(上屋) 건설 등과 함께 르네상스식 벽돌 2층 부산역을 1910년 10월 준공하였으며, 당시 한국철도의 최신식 건물이었다.
한편 1900년 7월 8일 경인철도 시종착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경성역은 1905년 1월 1일 초량~영등포간 경부철도 개통 후 1월16일부터 초량~경성간 경부철도의 시종착역이 되었으나 1905년 3월27일부터 서대문역으로 개칭되었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8話」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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