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들어와서 회사 경영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설비에 대한 투자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다.”(한전 고위 임원)
“두부 값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럴 수 없으면 콩값을 내려야하는데, 너무 비싼 콩을 쓰는 것 같다. 싼 전기 좀 쓸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E기업 대표)
지난달 24일 한국전력 나주 본사 29층 회의실. 한전은 이날 2018년 전력기자재 평가결과 최고품질의 전력기자재를 공급한 10개 제작사에 대한 감사장을 수여했다. 한전 측에서는 임원 및 관리자급 직원 9명, 우수 기자재 수상 기업들에서는 10개사의 대표자들이 마주 앉았다.
시상식이 끝나고 이어진 한전과 우수 중소기업 대표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콩과 두부값’ 얘기가 화두로 던져졌다.
한전의 모 임원은 “적정 원가를 보상받는 수준에서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게 여러 가지로 관련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만큼 제대로 두부값을 받고 싶다”고 말하자, I업체의 대표는 “국민 청원 운동을 한번 해보시죠. 한달에 20만명 돌파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답변해준다”고 응수했다. 다들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속은 찡그린 모습이었다.
이날 나온 ‘콩과 두부’ 이야기는 앞서 7월 1일 김종갑 한전 사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두부공장의 걱정거리’라는 제목의 글에서 시작됐다.
김종갑 사장은 전기요금을 연료가격(LNG·석탄) 변동 등 시장 원칙에 따라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두부 공장(한전)에 비유해 설명했다. 가공비 등을 고려할 때 당연히 두부값(전기)이 콩값(원료)보다 비싸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시상식 현장에서 중소기업 대표들과 한전 관계자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는 표면상으론 희극으로 끝났지만 본질로 들어가면 ‘아주 뼈아픈 비극’이다.
비극의 근거는 ‘탈(脫)원전’이다. 한전은 상반기 8147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는 작년 상반기 영업이익 2조 3097억원 대비 3조 1244억원이나 쪼그라든 수치다. 한전은 발전자회사의 연료비 상승(2조원)을 상반기 적자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한전의 적자를 두고 정부는 당초 계획된 원전의 유지보수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산업계에선 ‘탈(脫)원전’을 주범으로 보고 있다. 책상머리 정책과 산업 현장의 괴리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한전은 흑자전환을 위해 총 1.1조원 규모의 고강도 경영효율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설비·보수 자체 수행, 송배전 설비 시공기준 및 방법개선 등의 비용 절감에 7000억원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적자폭이 커지자 한전은 이미 돈주머니부터 움켜쥐기 시작했다. 한전은 올해 각 지역본부의 당초 설비 유지 보수 등의 예산 20~30%를 지난 3월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시방편으로 설비에 대한 투자부터 줄이고 있는 것이다.
업계 사이에선 그마저도 없었으면 한전의 상반기 적자가 2조 5천억원에 달했을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해외 원전 사업 수주와 국내 기자재 산업 발전을 위한 중소기업 지원 등 한껏 가속페달를 밟고 싶은 한전은 탈원전 정책의 ‘브레이크’로 인해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한전만 바라보는 중소기자재 업계는 숨을 헐떡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정부에서는 한전의 ‘두부값 걱정’이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우려다. 한전은 수익 다변화의 일환으로 UAE 원전 사업 수행과 사우디 원전 수주 노력을 꼽았는데, 위험하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없애겠다는 원전을 다른 나라에는 팔겠다고 한다. 탈(脫)원전 정책의 비극이자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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