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발전이냐, 공정성이냐”… 국토지리정보원의 ‘딜레마’항공 측량 담합 14개사 적발로, 제도 보완 목소리
발주 집중 3~5월, 업계 수주 담당자 “점쟁이 찾는다” “기술발전·고용선순환 위해 ‘기술제안서’ 방식 택해야” 국토지리정보원 “TP는 오히려 담합 가능성 훨씬 커”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공간정보 기업 14개사를 담합 혐의로 적발하고 총 108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 중 11개사는 검찰에 고발했다.
14개 업체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총 37건의 국토지리정보원 입찰에서 낙찰 여부와 상관없이 각 사가 지분을 나누어 공동으로 용역을 수행하기로 합의한 후 낙찰 예정사와 투찰 가격 등을 사전에 모의한 혐의다.
2009년 당시 항공 촬영업 면허를 등록한 10개 사가 최초 협약서를 작성하고 합의를 시작했으며, 이후 새롭게 면허를 등록한 업체를 합의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2013년까지 담합 행위에 가담한 것이다. 현재 서울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으로, 지난 5월말 서울지방법원에서 2차 공판이 열렸다.
이를 두고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입찰사업자 선정을 위한 평가지표에 의한 결과로, 용역적격심사(PQ)제도에 의한 낙찰자의 결정에 필요한 세부기준인 용역적격심사기준에서 담합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과 국내 공간정보산업계가 공공 발주 방식의 하나인 PQ제도에서 ‘공정성 제고’와 ‘기술력 향상’이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른 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근본적인 의문에 놓인 것이다.
PQ(Pre-Qualification·입찰참가 자격 사전심사제도)는 공공 발주기관이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의 재무상태·기술수준·시공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사전에 심사하는 제도다.
업체의 부실공사 방지를 위해 입찰에 참가하는 업체에 대해 사전에 시공경험과 기술능력, 경영상태, 신인도등을 종합적으로 검증 평가하는 제도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과 회계예규에 규정돼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발주 방식’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연간 발주사업은 평균 PQ(70%), TP(Technical Proposal·기술제안서평가)(30%) 비중을 보인다. 올해 국토지리정보원은 6월초 기준 50여건의 PQ 사업을 발주했다. TP사업은 19여건 진행됐다.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일반적인 지도제작 사업들은 모두 PQ로 발주되고, 그 외 연구나 전문적인 신규 사업들은 TP로 발주할 수밖에 없다”면서 “과업이 난이도가 높아서 유찰이 되는 경우도 있고, 업체가 한 군데 정도만 들어오면 수의계약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PQ제도가 기술발전 저해”
사실 PQ제도를 두고 국토지리정보원은 물론 업계 사이에서도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발주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은 사업 발주 시 ‘공정성 제고’를 외면할 수 없고, 업계 사이에서도 투자를 늘려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현행 PQ제도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반면 소규모의 영세 업체인 국내 공간정보 기업의 특성상 대다수의 업체들은 PQ제도를 두고 “가장 공정한 제도”라고 입을 모은다. 해당 발주 사업의 면허를 보유하고, 일정 수준의 기술력만 있으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업체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얘기다.
국토지리정보원 입찰을 두고 업계 사이에서 이른 바 ‘총 쏘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항간에서는 국토지리정보원의 발주가 집중되는 3~5월경에는 업계 대표 및 사업 수주 담당자들이 “계룡산에 치성을 드리러 간다” “점쟁이를 찾는다”는 웃지 못 할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현 발주제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공간정보는 특히 시대가 바뀜에 따라 기술이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PQ제도에서는 정형화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업체의 재무건전성과 인력 등의 실적으로만 평가를 하기 때문에 기술발전 측면에서는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PQ제도 하에서는 국내 공간정보 산업 기술력이 정체돼 고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국가 입장에서는 가격 제한 최저에 가장 일치하는 입찰을 한 업체하고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TP제도가 대안일까?
공간정보 전문가들은 국내 공간정보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국토지리정보원이 사업 발주 시 TP제도를 적극 활용해야한다고 말한다.
한 전문가는 “현행 PQ제도 기술능력 평가 부문에서는 거의 모든 업체가 만점을 받고 있어 평가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더불어 기술인력 평가 부문에서 자격증 불법대여자가 발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환경이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력 자격을 맞추기 위해 기술자 자격증을 불법으로 대여하고, 일단 사업을 수주한 후에는 신생업체에 재하도급을 준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자격증 1개에 한 달에 30만원에 거래되고 하도급 업체에 사업비 50%를 떼고 넘기는 상황에서 기술발전은커녕 고용의 선순환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는 “현재 국내 업체 중 TP사업을 할 수 있는 회사와 없는 회사를 볼 때 70~80%의 회사들은 PQ제도 정도에만 사업을 참여할 수 있는 구조”라며 “공무원은 감사에 취약하기 때문에 TP 발주를 확대하면 되레 특정회사를 봐준 것 아니냐는 말이 우려돼 보편타당한 PQ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행 PQ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한 듯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난 3월 적격심사 배점범위에서 기술점수는 높이고 가격점수는 낮추는 등 기술심사 배점을 높여 기술력이 우수한 업체가 낙찰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취지로 용역적격심사기준을 일부 개정했다.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사업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업체에는 기회를 주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세부적인 평가 부분은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할 거라고 보는 만큼 관련 기준 등을 지속적으로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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