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마철 물은 새고, 책임은 사라진다

누수 갈등, 제도의 빈틈이 만든 소모전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6/07/24 [12:14]

[기고] 장마철 물은 새고, 책임은 사라진다

누수 갈등, 제도의 빈틈이 만든 소모전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6/07/2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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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기 교수   ©매일건설신문

 

장마철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다. 세탁실 벽이 젖어들기 시작하면 윗집은 결로라 우기고 관리사무소는 누수라 단정한다. 그러나 도배지를 뜯어내면 석고보드까지 물에 잠겨 무너져 내리고 창호를 교체해도 폭우가 몰아치면 다시 물이 스며든다. 업체마다 진단은 제각각이고 그 사이 아랫집 거실과 작은방 천장은 검은 얼룩으로 뒤덮인다.

 

누수는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다. 그것은 집의 구조를 갉아먹는 침투이며 사람들의 삶을 장기간 괴롭히는 고질적 재앙이다. 물은 조용히 스며들지만 그 흔적은 집요하게 번져 나가며 이웃 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결국 피해자는 지쳐 나가떨어지고 책임은 공허한 말싸움 속에서 증발한다.

 

흥미로운 점은 갈등의 구조다. 물이 샌다는 물리적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해석은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결로냐 누수냐를 둘러싼 논쟁은 과학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소재의 문제다. 도배비를 누가 부담할지 숙소비와 이사비까지 물어줄지 보험이 있는 세입자와 없는 집주인 사이에서 진실은 뒷전으로 밀리고 협상만 남는다. 매수하려는 집에서 얼룩을 발견해도 중개사는 “방수에 문제없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한다. 누구도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의 출발점을 따라가 보면 상당수는 입주민의 잘잘못이 아니라 애초의 시공 상태로 귀결된다. 배관 이음부의 부실한 마감, 방수층의 미비, 창호와 벽체 사이 코킹의 내구성 부족은 준공 시점에 이미 심어진 결함이다. 다만 그 결함은 곧바로 드러나지 않고 몇 년이 지나 자재가 삭고 이음매가 벌어지면서 비로소 물이 새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때가 되면 시공사는 이미 책임에서 벗어나 있고 그 대가는 아무 잘못 없는 위층과 아래층 주민이 나눠 치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구조를 지탱하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하자담보책임기간이다. 아파트의 경우 현행 공동주택관리법령은 하자의 종류에 따라 책임 기간을 시설공사별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방수나 배관처럼 시간이 지나야 결함이 드러나는 항목일수록 2년에서 5년 정도로 오히려 짧은 기간 안에 있어 놓치기 쉽다. 벽지 얼룩이 나타나고 원인을 특정해 시공사에 책임을 묻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지금의 하자담보책임 기간 설정은 실제 하자가 발현되는 시점과 자주 어긋난다. 결국 기간이 끝난 뒤 발견된 결함은 입주민들의 사적 분쟁으로 넘어가고 시공사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채로 남는다.

 

물론 하자담보기간을 무작정 늘리는 것이 만능 해법은 아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시공사의 부담과 분쟁 비용도 늘어나며 이는 분양가에 반영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방수와 배관처럼 결함이 시간차를 두고 나타나는 항목에 한해서는 발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자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 혹은 하자 원인 규명 절차를 공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이웃끼리 각자 업체를 부르고 서로 다른 진단을 들고 와 다투는 구조로는 정작 원인 제공자인 부실시공은 조용히 빠져나가고 애먼 사람들만 소모전을 치른다.

 

누수는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라 제도와 책임 구조의 문제다. 건물이 낡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대가를 누가 치르느냐는 자연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시공의 부실이 원인이라면 그 책임 역시 시공의 몫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반복되는 누수 갈등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단순하고도 절실한 요구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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