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력 부족 기술사 허용, ‘공공 안전’ 역행한다

국가기술자격법 응시자격 경력 완화의 문제점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6/05/08 [10:11]

[기고] 경력 부족 기술사 허용, ‘공공 안전’ 역행한다

국가기술자격법 응시자격 경력 완화의 문제점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6/05/08 [10:11]

▲ 최명기 교수  © 매일건설신문

 

안전과 품질의 관점에서 볼 때 경력 국가기술자격시험 응시 자격 경력 완화는 기술사 제도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 최근 기술사 응시자격 완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인력 공급 확대와 청년 진입 기회 보장이라는 정책적 명분이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의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기술사란 해당 기술 분야에 관한 고도의 전문 지식과 실무 경험에 입각한 응용 능력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자격이다. 1964년 제1회 시험 시행 이후 과학 기술의 진흥과 공공의 안전 확보 및 국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핵심 목적으로 삼아 왔다. 

 

기술사 제도는 처음부터 개인의 취업 사다리를 위한 자격이 아니라 국가가 공인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한 축으로 설계된 것이었다. 경력 완화론은 바로 이 본질에 대한 인식 없이 제도의 외피인 응시 문턱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기술사 제도에서 요구하는 다년간의 경력이 단순한 연수 채우기가 아닌 이유는 세 가지 차원의 숙련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판단력의 숙성이다. 공학 이론은 이상적 조건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건설 현장의 지반은 교과서와 다르게 거동하고 기계 설비는 매뉴얼과 다른 환경에서 작동한다. 기술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수십 번의 실패와 수정을 통해 체득한 현장 판단력이다. 이것은 시험지 위에서 검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경력만이 그 존재를 보증한다.

 

둘째는 책임 감각의 내면화이다. 건설기술인의 경력관리는 건설기술인의 자질 및 능력의 제고를 통해 부실 공사를 방지하고 국가 건설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도록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경력 연수가 쌓인다는 것은 기술적 숙련의 축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반복적으로 책임을 지는 경험이 누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임 감각은 단기 경력자에게는 형성되기 어렵다. 

 

셋째는 분야 간 연결 역량이다. 토질및기초기술사가 설계 도면만 보고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처럼 기술사의 판단은 인접 분야에 대한 경험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이 교차적 전문성은 최소 수년의 현장 경험 없이는 구축되기 어렵다.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기술사 84개 종목의 상당수가 국민의 생명·건강 및 안전에 직결되는 분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건설 분야의 토질 및 기초기술사, 건축구조기술사, 건설안전기술사는 지반 침하와 붕괴 판정, 구조물과 작업자들의 안전을 담당한다. 소방 분야에서는 연면적 20만 제곱미터가 넘거나 40층 이상이 되면 반드시 소방기술사가 감리를 수행해야 한다. 

 

이처럼 공공 안전과 직결된 종목에서 경력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기술사가 감리·판정 업무를 수행한다면 그 결과는 개인의 손해에 그치지 않고 다수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경력 요건 완화는 바로 이 위험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조치가 된다.

 

응시자격을 완화하더라도 기술사 시험 자체의 난이도가 높으므로 합격자의 질은 유지된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결정적 함정이 존재한다. 기술사 필기시험은 논술형으로 구성되어 해당 분야의 이론적 깊이를 검증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비정형적 현장 상황에서의 복합적 판단력 즉 특정 지반에서 특정 공법이 왜 위험한지를 경험으로 아는 것은 시험지 위에서 걸러낼 수 없다. 더 나아가 현행 응시자격 요건은 단순한 진입장벽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신호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사람은 최소 몇 년 이상 해당 분야에 종사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발주자와 의뢰인에게 기술적 신뢰의 근거를 제공한다. 경력 요건이 완화되면 이 신호의 신뢰도가 저하되고 결국 기술사 자격이 제공하는 정보의 질 자체가 희석된다.

 

국제적 흐름과 비교하여도 현재 한국의 완화론이 지닌 역방향성이 드러난다. 영국의 공인기술사 자격제도는 시험 한 번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과 경력을 통한 등록·유지 제도를 그 특징으로 한다. 대학 졸업 후 2년 이상의 체계적인 훈련을 이수하고 이후 최소 2년 이상 현업에 종사하며 전문성에 대한 심사와 면접을 통해 역량을 검증받아야 하며 일반적으로 대학 졸업 후 4년에서 8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영국이 취득 요건을 단순화하되 사후 역량의 유지와 갱신을 엄격히 관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은 1999년에 이미 자격 갱신 의무를 폐지한 상태에서 이제 취득 요건마저 완화하려 하고 있다. 이는 진입장벽과 사후 관리를 동시에 이완하는 이중 약화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이는 기술사 자격의 사회적 신뢰를 구조적으로 침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술사 제도 개편의 방향은 경력 연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경력의 내용과 질을 높이고 검증 방식을 정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장 배치 기록, 프로젝트 성과, 사고 이력 등을 포함한 경력 포트폴리오 심사제의 도입, 경력 인정 범위의 합리적 확장 그리고 무엇보다 취득 후 갱신·유지 의무의 재도입이 병행되어야 한다.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문턱의 형태를 바꾸되 공공 안전을 담보하는 기술사 제도의 본질적 기능은 결코 희석시켜서는 안 된다. 경력 완화는 기술사 제도를 더 많은 사람에게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술사가 사회에 제공해 온 신뢰를 더 많이 소모하는 것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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