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란봉투법, 안전 챙길수록 위험해지는 역설

중처법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안전·교섭이 뒤엉킨 구조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6/04/21 [13:30]

[기고] 노란봉투법, 안전 챙길수록 위험해지는 역설

중처법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안전·교섭이 뒤엉킨 구조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6/04/21 [13:30]

▲ 최명기 교수     ©매일건설신문

 

올해 3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됐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행 한 달 만에 하청 노조의 원청 교섭 요구가 1000건을 넘어섰다. 변화는 빠르고 혼란은 더 빠르다.

 

특히 건설업계의 상황은 심상치 않다. 한화, GS건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들이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판정’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단순한 노사 분쟁이 아니라 안전과 교섭이 뒤엉킨 기묘한 역설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원청은 하청 근로자의 안전관리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안전시설 설치, 장비 지급, 출입 통제, 공정별 점검 등은 모두 법적 의무다. 게을리하면 경영자가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는 바로 이 점을 근거로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한다. 원청이 안전을 관리했다는 사실 자체가 교섭 당사자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법을 잘 지킨 기업일수록 더 많은 의무를 떠안는 구조다.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은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제도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두 법이 마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작동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힘을 가하는 긴장을 만들어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에게 “안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압력을 가한다. 안전시설을 설치하고 장비를 지급하며 작업 절차를 통제하는 행위가 곧 원청의 책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법은 원청이 안전을 소홀히 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

 

반면 노란봉투법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이나 업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면 ‘사용자성’을 인정하여 교섭 의무를 부여한다. 안전관리 역시 그 영향력의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원청이 안전을 챙기는 행위가 곧 교섭 당사자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안전을 강화할수록 형사책임과 교섭의무라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 상황을 눈앞에 그려보면 한쪽 톱니바퀴는 “안전에 개입하라”는 방향으로 돌고 다른 톱니바퀴는 “개입하면 교섭 의무가 생긴다”는 방향으로 돈다. 두 톱니바퀴가 맞물린 채 서로 다른 힘을 가하니 현장은 그 사이에서 삐걱거린다. 기업은 어느 쪽으로 움직여도 부담을 안게 되고 노동자는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해하며 결국 안전은 그 틈새에서 밀려난다.

 

여기서 섬뜩한 질문이 나온다. 만약 기업들이 사용자성 판정을 피하려고 안전관리에 일부러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면? 법이 의도치 않게 건설현장의 안전 후퇴를 불러올 수 있다. 파업으로 공정이 지연되면 일정 압박은 커지고 피로와 절차 생략은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또 다른 위험은 안전이 협상 카드로 전락하는 것이다. 안전 문제가 교섭 수단으로 활용되면 현장에서는 “진짜 위험인가, 협상용인가”라는 불신이 퍼지고 중요한 안전 신호가 묻혀버릴 수 있다. 안전이 목적이 아닌 도구가 되는 순간 현장의 안전은 무너진다.

 

노란봉투법의 방향 자체는 옳다. 원청이 책임을 회피하던 불합리한 구조를 바로잡고 장기적으로 노동조건과 안전 수준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판정 기준의 불확실성이다. 전남지노위는 중흥건설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경북지노위는 포스코이앤씨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같은 업종, 비슷한 구조인데 결과가 달라 현장은 기준을 알 수 없다. 판정문은 결정 후 30일이 지나야 공개되니 왜 다른지조차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위험이다. 기업은 방어적으로 움직이고 노동자는 불안해하며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다.

 

건설현장은 매년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곳이다. 대부분은 추락사고다. 이를 줄이려면 원청의 책임 강화, 노동자의 발언권 확보, 하청 구조 개선이 모두 필요하다. 노란봉투법은 그 방향으로 가는 입법이다. 그러나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는 혼란은 좋은 방향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전을 챙길수록 교섭 의무가 늘어나는 역설, 파업이 길어질수록 공기 압박이 커지는 현실, 판정 기준이 지역마다 달라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건설현장을 짓누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법의 방향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그 방향으로 제대로 가기 위한 정밀한 가이드라인과 현장 중심의 집행 기준이다. 법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안전을 지켜낼 수 있는 세밀한 설계가 절실하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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