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원사업자와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생활형숙발시설 시행사인 발주자, 굴지의 건설사인 원사업자와 함께 하도급계약 직접지급합의를 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발주자는 신탁회사에게 시행신탁을 하였다 한다. 공사 도중에 기성금이 밀리기 시작했지만 준공되면 반드시 지연이자까지 쳐서 주겠다는 시행신탁으로 새로이 시행사가 된 신탁사와 시공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돈을 빌려서 공사를 준공했다.
그리고 신탁사에게 돈을 달라고 했더니 신탁사는 이미 시행신탁이 종료되어 이제 발주자가 신탁사라고 했고 발주자에게 돈을 달라고 했더니 분양이 실패해서 돈이 없다면서 지급을 거절했다. 원사업자는 굴지의 건설사이므로 재무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원사업자에게 청구했더니 원사업자는 하도급법 제14조 제2항에서 “제1항에 따른 사유가 발생한 경우 원사업자에 대한 발주자의 대금지급채무와 수급사업자에 대한 원사업자의 하도급대금 지급채무는 그 범위에서 소멸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 것을 들면서 직접지급합의를 한 때에 원사업자에 대한 수급사업자의 채무는 소멸한 것이므로 자신이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A. 하도급법 제14조 제2항은 “제1항에 따른 사유가 발생한 경우 원사업자에 대한 발주자의 대금지급채무와 수급사업자에 대한 원사업자의 하도급대금 지급채무는 그 범위에서 소멸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또한 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 제3항은 '제2항의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하여 발주자가 하수급인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한 경우에 발주자의 수급인에 대한 대금 지급채무와 수급인의 하수급인에 대한 하도급대금 지급채무는 그 범위에서 소멸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여, 하도급법과는 달리 발주자가 하수급인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한 경우에 한하여 발주자의 수급인에 대한 대금 지급채무와 수급인의 하수급인에 대한 하도급대금 지급채무가 그 범위에서 소멸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도급법 제34조(다른 법률과의 관계)에서 ‘건설산업기본법이 하도급법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하도급법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수급사업자에게 불리한 경우에까지 무분별하게 하도급법을 우선 적용하라는 취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결국, 하도급법에 따른 직불합의라 하더라도 그 문언 및 합의 당시 당사자 의사를 먼저 살펴 그 의사를 해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당사자 의사해석상 면책적 직불합의인지 중첩적 직불합의인지를 판단하되, 다만 하도급계약 체결 당시 또는 공사 초기에 하는 직불합의가 공사대금에 대한 담보적 성격이 있음을 고려할 때 원칙적으로 중첩적인 직불합의로 봄이 타당하다. 중첩적 채무인수에서 채무자와 인수인은 통상 주관적 공동관계가 있는 연대채무 관계에 있으므로(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9다32409 판결 등 참조), 원사업자는 발주자와 하도급대금에 관하여 연대채무관계에 있게 된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2022. 9. 7. 선고 2019가단35366 판결(공사대금) 판결은 동일한 견지에서 “직불합의가 있더라도 면책적 채무인수인지 중첩적 채무인수인지는 당사자 의사해석에 따라야 하나, 채무인수에 있어서 면책적 인수인지, 중첩적 인수인지가 분명하지 아니한 때에는 이를 중첩적으로 인수한 것으로 볼 것이며, 면책적 채무인수라고 보아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측에게 있다(대법원 2015. 9. 24. 선고 2015다30596 판결 참조)”라고 판결했다. 이에 의할 때, 귀사는 원사업자에게도 하도급대금 청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원사업자 마저도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경우이다. 시행신탁으로 건설프로젝트를 시행했는데 분양이 되지 못하면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 요즘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 뿐 아니라 중소규모 개발사업에서도 시행신탁제도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시행신탁으로 부동산이 개발되는 경우 실질적 시행사(신탁자, 위탁자)가 아니라 수탁자인 신탁회사가 시행사이자 발주자가 된다. 문제는 시해신탁으로 이루어지는 건설공사에 있어 수급사업자의 권리보호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고 하도급법이 제기능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수급사업자는 관여하지도 않은 시행신탁계약(통상 실제 사업주, 신탁회사, 채권단, 시공사인 원사업자가 체결)에서는 신탁회사가 원사업자에 대한 공사도급대금 지급순위를 PF대출의 지급이자나 기타 사업비보다 후순위로 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행신탁으로 이루어지는 공사의 법적 구조는 그림과 같다.
이 경우, 발주자, 원사업자, 수급사업자가 직접지급합의를 하고 하도급공사를 시작하더라도 발주자인 시행사(신탁회사)는 신탁계약상의 원사업자에 대한 공사도급대금의 지급순위로 수급사업자의 직접지급청구에 대항할 수 있다. 물론 시행신탁공사에서 예상처럼 분양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분양수익으로 신탁회사가 원사업자에게 원도급공사금액을 제때 지급할 수 있으므로 원사업자의 하도급공사도 제 때 지급될 수 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부동산 불경기의 상황에서 분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 발생한다.
신탁회사는 PF 이자, 신탁보수, 필수사업비 등 공사대금보다 지급순위가 앞서는 금액을 먼저 지급하고 나면 유동성 부족으로 공사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다. 통상 원사업자는 신탁회사와 책임준공약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도급금액을 못 받더라도 준공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 때문에 하도급대금을 못주거나 조금 주면서 온갖 감언이설로 하도급공사를 진행하도록 하고 심지어 신탁회사가 나서서 ‘시행계약에 따른 공사대금을 지급하여 하도급업체의 피해가 없게 만들겠다’고 하나마나한 약속까지 하여, 수급사업자를 속여 공사를 계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행계약에 따른 책임’이란 당연히 신탁계약 순위에 따른 공사대금 지급을 말하는 것이라, 분양수익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면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되다. 공공적 성격이 강한 신탁회사가 잘 모르는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양아치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관련하여 판례는 신탁회사 편이다. 대법원 2023. 6. 29. 선고 2023다221830 판결은 “건축사업의 실제 시행가 먼저 시공사와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다음, 신탁회사에게 신탁사업약정, 관리형토지신탁계약, 위 공사도급계약의 승계계약을 체결하면서 위 공사도급계약에 관하여 기성금지급순위를 7순위로 정한다고 한 사안에 대한 것이다. 그 후 원사업자가 도급공사 중 일부 공사를 수급사업자에게 직불합의를 하였습니다.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로부터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자 직불합의에 근거하여 신탁회사에게 직접지급합의에 근거해 청구하였다. 대법원은 신탁회사는 수급사업자의 직접청구에 대하여 시공사와 체결한 자금집행순서 약정을 이유로 대항할 수 있고, 위 자금집행순서의 성격은 정지조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던 것입니다. 분양수익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원도급대금이고 직불합의에 따른 하도급대금이고 모두 못줘도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이다. 한편, 공사가 준공되면 시행신탁은 종료되거나 해지되고 다시 신탁회사(수탁자), 사업주(신탁자), 채권자, 시공사가 모여 담보신탁으로 변경하면서 해지된 시행신탁계약에 따라 시행사의 지위가 신탁회사(수탁자)에서 실제 사업주(신탁자)로 이전되도록 되어 있다. 이 경우 신탁회사는 더 이상 발주자가 아니므로 신탁회사에는 직접지급청구를 할 수 없다는 판결이 있다(2024. 11. 20. 선고 2024다2023116 판결). 통상 이런 상황은 PF 사업의 실패로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하도급대금까지 지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데, 수급사업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하도급거래가 완료된 이후에 발주자의 지위를 이전할 수 있다고 본 것은 하도급법 취지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지급합의를 하면 원사업자의 수급사업자에게 대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의무가 면제되는데, 시행신탁의 경우에는 절대로 직접지급합의를 하면 안된다. 지급보증을 받아야만 한다. 만약 지급보증을 받지 않고 직접지급합의를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도급대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모조건 하도급공사를 중지하고 신탁회사가 자기 재산으로 아무 조건없이 하도급대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지 전까지는 공사를 재개하지 않고 유치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와는 별개로 시행신탁방식의 공사에서 하도급법의 각종 제도들이 무력화되므로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하여 시행신탁에서도 수급사업자의 권리가 보호되도록 하루 빨리 입법화할 필요가 있다.
/정종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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