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사업자 자발적·진정한 동의만이 하도급법상 유효한 동의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였는데 세상이 각박하면 다툼이 많이 나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의 다툼이 유독 많이 일어난다. 그 때 원사업자가 가장 많이 하는 항변이 수급사업자 동의를 받고 한 것인데 왜 위법하냐는 주장이다.
그런데 우리 법원과 공정거래위원회는 단순히 수급사업자가 동의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진정하게 ‘자발적 동의’가 있어야만 하도급법상 유효한 동의라는 입장이다. 도대체 ‘자발적 동의’는 무엇이고 인정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일까?
‘자발적 동의’란 수급사업자 입장에서 진정한 의사로 동의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원사업자가 요구·제안한 사항에 대하여 수급사업자가 YES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자발적 동의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에 대하여 거래상 열위의 지위에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심각한 의존관계와 권력관계로 인하여 ‘NO’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원사업자의 제안이 수급사업자에게 충분히 이익이 되는 것이었고, 절차적으로도 충분한 교섭과 협의가 있었던 경우에 자발적 동의가 인정되고 있다. 마치 성인지감수성과 비슷하게, 원사업자가 아니라 수급사업자의 입장에서 NO가 아닌 YES라고 말할 사안이었는지를 따져보는, 소위 ‘갑을인지감수성’이라는 기준에서 판단될 수밖에 없다.
우리 대법원 역시 “수급사업자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한 것인지 여부는 수급사업자에 대한 원사업자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의 정도, 수급사업자의 원사업자에 대한 거래의존도, 거래관계의 지속성, 거래의 특성과 시장상황, 거래 상대방의 변경가능성, 당초의 대금과 감액된 대금의 차이, 수급사업자가 완성된 목적물을 인도한 시기와 원사업자가 대금 감액을 요구한 시기와의 시간적 간격, 대금감액의 경위, 대금감액에 의하여 수급사업자가 입은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등을 정상적인 거래관행이나 상관습 및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 같은 입장이다(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다53457 판결). 공정거래위원회의 심결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원사업자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기준이라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또, 수급사업자가 충분히 협의해서 동의한 사항을 사후에 불만이 생겨 부당하게 동의를 강요받았다 주장하면 원사업자가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할 수도 있다. 금전까지 요구하는 ‘을질’을 할 수도 있다. 일리있는 불만이고 걱정이다.
하지만 하도급거래 공정화와 수급사업자 보호는 시대의 흐름이고 정신이다. 이를 거슬러 가려는 것은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을질’보다는 ‘갑질’이 훨씬 빈번하고 엄중한 것이 많다는 것이 현장의 경험이기도 하다.
원사업자들로서는 점검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 갑을인지감수성 차원에서 수급사업자 입장을 한 번 더 살피고 수급사업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나아가 행여 있을 수 있는 억울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하여 수급사업자의 협의 과정에 대한 기록과 증거를 꼼꼼히 남겨야 할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나 법원, 검찰도 이런 원사업자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자발적 동의를 얻었음을 소명한다면 하도급법 위반 여부에 대하여는 과감하게 면책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수급사업자들이 ‘을질’을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꼼꼼히 양측의 주장과 관련 자료들을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정종채 변호사(하도급법학회장, 법무법인 에스엔 조세/공정거래 부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