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단
[기획칼럼]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38話」
일제의 사설철도 운영
매일건설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20/02/10 [08:59]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철도교통문화협회 손길신 명예회장(前코레일 철도박물관장)     ©매일건설신문

1909년 부산경편궤도(주)에서 부산진~남문~온천장 간 9.56㎞(610㎜ 협궤) 개통이후 일제는 사설철도 보급을 위해 철도부설이 필요한 구간의 교통 및 경제상황을 조사하여 제공하는 한편 1913년광주~송정리 간 경편철도와 전북경편철도회사의 이리~전주 간 철도 부설 및 조선와사전기회사의 동래~대구, 포항~경주, 울산~장생포 간철도부설을 허가하면서 사설철도 보조비 예산을 설치하였다.

 

1914년10월 전주~이리 간 협궤철도를 개통시킨 전북경편철도에 1915년 최초로 보조금 1만원을 지급한데 이어 1916년부터 조치원~충주~공주~평택~음성~장호원~여주 간 철도부설을 허가받은 조선경편철도(후에 조선중앙철도로 변경)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으로 보조금은 매년 증가하여 1919년에는 20만3000원이 지급되었다.

 

1917년까지 연 6%였던 보조금의 한정비율을 1918년 연 7%로 높였으며, 1919년 이후 유럽 전쟁의 여파로 경제가 호황을 보이면서 사철사업에 관심이 높아지자 자금조달 및 융통의 편익을 위하여 1919년 철도재단을 설정하고 이를 저당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편법을 허용하는 ‘조선재단저당령’을 제정함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사설철도사업에 참여하여 1920년 말 사설철도는 12개의 사설철도회사가 연장 359㎞의 선로에 증기기관차 41대로 객차 351량과 화차 599량을 운행하였다.

▲ 일제 시 사설철도  © 매일건설신문


1920년 사설철도령과 사설철도건설규정의 제정 및 사설철도계원직제를 제정하여 운수계원, 역장, 조역, 보선계원 등의 직무를 정했으며, 1921년에는 사설철도보조법과 시행규칙을 제정한 후 1923년 보조기한 10년을 15년으로 연장하고, 보조금 연간 총액 250만원을 300만원으로 인상하였으며, 이러한 지원정책에 힘입어 1924년 조선철도회사의 화산~미력 간 황해선과 김천~점촌 간 경북선의 운수영업이 시작되었다.

 

도한 금강산전기철도회사는 철원~금화 간 증기기관차로 운행하던 철도를 8월부터 전기철도로 변경하여 운행을 시작하였다.

 

또한 1925년 보조금 연간 총액을 450만원으로 인상한데 이어 1930년 500만원으로 인상하였으며, 1942년 말 사설철도 수입은 여객 13,342,945원(47.7%), 화물 14,652,181원(52.3%), 합계 27,995,126원으로 전년대비 여객수입 3,846,969원, 화물수입 1,829,221원 등 도합 5,676,190원이 증가하였다.

 

영업수지상황은 수입 31,051,496원의 영업비용 24,145,799원으로 6,905,697원의 이익금이 발생하여 전년 대비 1,923,026원이 증가하였고, 투자액은 1942년 현재 279,243,000원으로 납입자본금은 104,190,000원(37.3%), 사채 및 차입금 171,670,000원(61.5%), 특유자본은 3,383,000원(1.2%)에 이르며, 사설철도의 영업키로는 1,500㎞를 넘어서 총 철도 영업키로 6,400여 ㎞의 23%를 넘어서는 철도교통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었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39話」에서도 이어집니다. 

 

 ⓒ 매일건설신문, 무단 전재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트렌드 ISsUe
“사용자 위주의 다양성 있는 에너지R&D 발굴”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