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중인 1905년 일제는 청진~회령, 청진~나남 및 서호진~함흥 간에 궤간 600㎜의 수압식경편철도를 부설하여 병참수송 후 민간에 불하하여 여객, 화물운송에 사용되었으며, 함경선의 본격적인 건설은 1912년 선로예측 후 남부 원산~영흥 구간 54.4㎞와 북부 청진~회령 구간 92.6㎞를 1914년부터 5년 동안 부설을 완료한 후 나머지 구간은 8년간 부설할 계획으로 1914년 4월 실측을 시작했다.
10월에 착공했으며, 건설자재는 현지조달 가능한 것 외에는 원산에서 청진까지 선박으로 수송하여 청진에서는 기존의 경편철도를 이용하여 현장에 운반 되었다.
남부 구간은 1915년 7월 원산~문천 간 20㎞를 완공하여 8월부터 최초로 운수영업을 시작한 후 9월 1일 영흥까지 개통, 영흥~함흥 간 69.5㎞는 1919년12월 1일 개통하였는데 당시 1920년 5월18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5월16일 함흥역 광장에서 원산~함흥 간 함경선 개통식에 총독부 정무총감을 비롯하여 경성에서 내려간 관민 수 백 명과 근처 인사 수 백 명이 참석하고 경성 음악대까지 참석한 여흥과 함께 개막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고 한다.
북부 극동~수성 간 94.1㎞는 1919년12월 수성~나남 간 개통을 시작으로 1920년11월 경성(鏡城 : 京城과 구분)에 이어 주을까지 개통하여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주을에서 수남까지는 1924년10월, 단천~일신구간 22.6㎞는 1924년 10월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남부 함흥~신북청 간 117.4㎞ 는 동해안 풍광이 빼어난 백사장 해변을 지나 신포, 퇴조 등 유명한 어항을 포용하는 노선으로 함흥~서호진 간 18㎞는 1922년12월 개통, 서호진~퇴조 간은 1923년 9월, 퇴조~양화 간은 1924년11월 개통에 이어 1925년11월 속후, 1926년11월에는 신북청까지 개통하였다.
특히 이 구간에서 한국철도사상 최초로 폭약(카리트 : cerit)을 사용하여 토공 절취를 하였으며, 속후~신북청 간 남대천유역의 절취공사 중에는 한국 부인의 완벽한 미라가 발견되어 학술용으로 박물관에 보관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북부 극동~수남 간은 1923년 9월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지연되어 1926년10월에 준공되었고, 1927년11월 군선~단천 간, 12월 용동~길주 및 신북청~반송 간 개통에 이어 반송~군선 간이 1928년 9월에 개통됨에 따라 전구간이 개통되어 1928년10월 1일 나남역에서 함경선 전통식이 거행되었다.
본래 함경선은 함경남도 원산과 함경북도 회령까지 623.6㎞의 노선이었으나 1940년10월 1일 도문선 회령~상삼봉 간 40.4㎞가 편입됨에 따라 원산~삼상봉간 664.0km의 노선이 되었다.
1945년 당시 함경선은 원산역부터 덕원 문평 문천 용담 전탄 고원 현흥 영흥 마장 범포 왕장 문봉 신상 부평 정평 함남흥상 함흥 본궁 흥남 서호진 마전 여호 퇴조 세포리 삼호 용운 전진 경포 운포 중호 영무 신포 양화 강상리 속후 신북청 신창 거산 건자 나흥 증산 염분 송단 군선 쌍암 곡구 기암 용강 오몽리 단천 여해진 용대 일신 만춘 쌍용 성진 신성진 농성 학중 업억 원평 노동 길주 금송 온수평 고참 내포 명천 상룡전 용동 영안 극동 조막산 봉강 어대진 회문 용현 주을 생기령 경성(鏡城) 나남 청진서항 청진어항 청진 수성 석막 장흥 부령 고무산 창평 전거리 풍산 중도 대덕 회령 금생 고령진 학포 신전 간평 상삼봉역까지 102개역이었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27話」에서도 이어집니다. ⓒ 매일건설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