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제19話」

프랑스의 부설권 허가요청 거절에 독일이 받으려 노력했던 경원철도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19/04/24 [15:27]

[기획칼럼]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제19話」

프랑스의 부설권 허가요청 거절에 독일이 받으려 노력했던 경원철도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19/04/24 [15:27]

-프랑스의 부설권 허가요청 거절에 독일이 받으려 노력했던 경원철도-

 

서울~원산 간 경원철도는 1896년 프랑스 휘브릴사가 경의∙경목선과 함께 부설권을 신청했던 노선으로 일본, 영국, 러시아, 독일 등도 참여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대한제국정부는 1897년 외국에는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한 후 1898년 1월12일 이미 허가된 것 외 철도, 광산 경영을 외국인에게는 일체 불허한다는 방침을 의결했다.  

 

하지만 단순한 대외 방침에 불과할 뿐이라 판단한 독일영사와 볼터(Carl Andreas Wolter : 세창양행 지배인)는 일본 방해만 없으면 경원철도 부설권 획득이 가능하다 판단하고 일본의 협조를 구했지만 일본은 오히려 독일이 특허를 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방침으로 방해공작을 진행한 노선이다.

 

이러한 정부방침에 힘을 얻은 박기종은 ‘국내철도용달회사’를 설립하고 1899년 5월15일 「원산과 경흥항은 오래 전 개항되어 물자가 풍부한 대도시임에도 철도가 부설되지 않은 것은 국가 민족에 손해이므로 물자 수송과 인민의 내왕 편의를 위해 필요하다」며 경성~원산, 경흥 간 철도부설 청원서를 제출하자 정부는 6월17일 외국에 전매하면 엄형에 처한다는 단서를 붙여 허가하였고, 국내철도용달회사는 7월21일 혜화문(동소문) 밖 삼선동을 기점으로 원산가도를 따라 의정부를 거쳐 양주군 비우점(碑隅點)에 이르는 약40㎞ 구간 선로측량을 시작하였지만 자금사정으로 중단하였다.

 

1899년 9월 궁내부 내장원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고 경의∙경원선 건설을 관장토록 한 것을 일본은 궁내부 산하에 철도원이 있음에도 내장원에 또 서북철도국을 설치한 것은 철도부설권을 담보로 외국자본을 들여오려는 것이라 판단하고 일본 아닌 외국자본의 투입을 막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였고, 특히 ‘국내철도용달회사’는 경의선 부설허가를 받았던 ‘대한철도회사’와 동일 회사로 1904년 3월 경의철도자금 대여계약 해지 때 대여한 15만원을 유보한 것을 경원선과 연동시켜 주도권을 행사할 계획이었다.

▲ 원산방면측량원     © 매일건설신문

 

또한 경원철도도 군용철도로 부설해야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자 군용철도감부는 1904년 8월27일 일방적으로 이를 결정하고 주한일본공사에게 토지 수용에 관한 교섭을 지령함에 따라 하야시공사는 당시 이하영 외부대신에게 ‘일본정부는 군사상 필요에 의하여 서울에서 원산까지 군용철도 또는 도로를 개설할 것이며, 필요에 따라 두만강연안까지 선로를 연장하려하니 이와 경쟁 또는 병행하여 철도를 부설하지 못하게 할 것을 사전에 승낙하고, 필요한 토지수용, 기타에 관하여 경의선 군용철도와 동일한 조건으로 대한제국정부에서 상당한 편의를 제공해 줄 것을 공문서로 요구하며 압박을 가하였다.

▲ 용산방면측량원     © 매일건설신문


이어서 군용철도감부는 일방적으로 원산과 용산에 철도 건축반을 설치하고, 원산~용지원간 35.4㎞의 선로 측량을 1904년 12월에, 용산~의정부간 31.5㎞의 선로 측량은 1904년11월에 마쳤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20話」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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