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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제9話>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경부철도의 최초 지선(支線)마산포선(馬山浦線)이야기
매일건설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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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7 [17:0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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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註):

본지는 철도가 지닌 특별한 역사(歷史)성 즉 이 나라가 겪은 격변의 시대를 단순히 교통 운송 수단이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숨결 같은 존재이기에, 또 철도史가 잘못 알려진 보편적 오류들이 한국사 안에서도 많아, 철도교통문화협회 명예회장인 손길신 前 코레일 철도박물관장을 통해 바로잡는 동시에 철도역사의 관심을 고 취시키고자 연속해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1902년 6월 박기종(朴淇淙)은 삼랑진~마산간 철도부설을 위한 영남지선철도회사(嶺南支線鐵道會社)를 조직하여 11월28일 1900년 4월 궁내부에 설치된 철도원으로부터 영남지선 부설특허를 받고, 12월18일 농상공부 인허를 받았다.

 

하지만 철도 건설자금과 회사용 경비 일체를 일본제일은행에서 차용하고, 청산 시 까지 철도건설 및 운전에 관한 일체를 채권자에게 위탁하고, 회사는 부지매수와 매수가옥 이전 및 건설에 필요한 기자재 수입 시 세금 면제를 주선해야 한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출자계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철도부설권을 외국에 매도 또는 양여할 수 없다는 조선왕실의 내국인 독점사업 방침에 부합시켜 다른 열강 국가들의 참여를 차단하고 실질상으로는 운영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일본은 마산선 부설보다는 다른 나라가 마산선의 부설권 획득을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어서 1903년 2월 일본인 기사장 카사이(笠井)을 보내 노선답사를 하였을 뿐 공사를 진행치 않아 영남지선철도회사는 9월 4일 일본 채권자에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이와는 별도로 1904년 1월 삼랑진~낙동강연안 간 2마일 미만의 지선 공사를 시작하여  5월27일 삼랑진~낙동강연안 간 가선을 개통하기도 하였다.

 

1904년 2월 노일전쟁으로 마산선 부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일본은 3월12일 노반공사를 시작으로 협궤철도 부설공사를 시작하였지만 7월 1일 경부철도 건설용 침목을 싣고 북해도에서 부산으로 항해하던 영국기선이 러시아함대에 나포됐다. 7월24일에는 미국에서 주문한 경부철도 건설 자재를 실은 영국기선이 한국으로 항해 중 러시아함대에 격침됐다.

 

일본이 경의철도를 군용철도로 부설하기 위해 1904년 2월 설치한 임시군용철도감부에 8월14일 마산포선 철도건설반을 추가로 설치하고 9월14일 한국정부에 마산포선을 군용철도로 건설한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부설특허권자인 영남지선철도회사의 손해보상을 요구하였다.

 

이에 부설특허권자인 영남지선철도회사의 손해보상을 요구하였으나 오히려 일본제일은행이 피해자라며 이를 무시하고, 10월부터 일본군대가 철도부설 공사를 시작한 후 임시군용철도감부는 12월15일 부설공사를 중단시키고, 경부선이나 경의선과 같은 표준궤간으로 변경 할 것을 명령하였다.

 

명령에 따라 그간 부설된 협궤철도를 철거하고 1905년 1월22일부터 표준궤간으로 개축공사를 시작한 후 5월25일 낙동강교를 목교(木橋)로 준공하여, 5월26일 삼랑진~마산항 간 직통운행이 가능했지만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보수공사를 마친 후 10월21일 전구간이 완전 개통되었다.

 

1931년 4월 삼랑진~마산~진주구간이 경전남부선으로, 1956년 6월 진주선으로 개칭되었으며, 1968년 2월 광주선과 통합되어 삼랑진~송정리구간이 경전선으로 변경되었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10話」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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