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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제4話>
“2등 이상은 대한과 청국사람이 이용하고 일본사람은 주로 3등을 이용했다고… ”
매일건설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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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07 [15:3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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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註):본지는 철도가 지닌 특별한 역사(歷史)성 즉 이 나라가 조선 말 겪은 격변의 시대를 단순히 교통 운송 수단이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숨결 같은 존재이기에, 또 철도史가 잘못 알려진 보편적 오류들이 한국사 안에서도 많아 철도교통문화협회 명예회장인 손길신 前 코레일 철도박물관장을 통해 바로잡고자 연속해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경인철도인수조합은 1899년 5월 경인철도합자회사(사장 澁澤榮一)로 명칭을 변경하고, 미국인 James R. Morse에 의하여 소요자재가 확보되었고, 기반공사가 거의 이루어진 상태에서 마무리 공사를 진행하였으나 그해 7월 한강 대홍수로 철교부설이 어려워지자 대한정부로 부터 공사기간 연장을 승인 받았다.

▲ 1899년 9월18일 영등포임시승강장     © 매일건설신문

 

당시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1899년 9월18일 공사가 완료된 구간인 인천~노량진 간 가(假)개통 행사에 내․외 귀빈 초대를 위하여 자주 이용되는 마포 삼개나루 건너 한강 맞은편 영등포에 임시승강장을 가설하고 인천에서 이곳으로 열차를 보내어 나룻배로 건너온 경성 손님을 태우고 인천역으로 향했다.

 

경인철도 이채연 감독은 기차 처음 구경하는 사람들이 행여 열차에 치일까 걱정되어 농상공부에 경찰배치를 요청하였고, 독립신문기자는 다음 날 신문에 “....인천으로 향하는데 화륜거 구르는 소리가 우레와 같아.....”라며 처음 기차를 타본 느낌을 보도하였다.

 

가 개통구간은 인천-유현-우각동-부평-소사-오류동-노량진 간 21.3마일(34.4km), 열차는 오전, 오후 각 1회씩 2왕복, 인천~노량진 간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 운임은 1등 1원34전, 2등 66전, 3등 33전이었다. 1899년10월 9일자 독립신문에 의하면 개통 전 일본인들은 3등 칸은 대한과 청국사람들이나 이용할거라 했는데, 개통 후 조사해보니 일본사람이 3등 칸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

 

2등 이상은 대한과 청국사람이 많이 이용했으며, 전체 이용객수도  일본사람보다 청국사람이 많았다는 보도내용은 당시 사회상을 엿 볼 수 있게 한다.

 

열차운행은 12월 3왕복, 다음해 3월 4왕복으로 증편 운행되다가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가 준공됨에 따라 7월 8일부터 용산-남대문-경성역까지 전구간 25.7마일(41.3km)이 개통되어 이날부터 5왕복 운행되었으며, 1900년 9월 5일부터 용산역과 영등포역 매표소가 설치됨에 따라 인천~경성 간 모든 역에서 여객취급이 시작되었다하여 용산, 영등포역은 뒤늦게 개업되었음을 알 수 있다. 

▲ 경인철도전통기념식(1900.11.12.경성역)     © 매일건설신문

1900년11월12일 거행된 경인철도 전통 기념식에는 한․일 양국 국기를 게양하고, 시부사와 사장의 식사에 이어 대한철도원 민병석 총재의 축사와 지배인 아다치의 경과보고 후 오찬장에서는 일본공사, 대한외부대신, 미국공사 등의 축사에 이어 여흥으로 한국 군악 연주와 일본 연극 관람 등으로 오후 5시까지 진행되었다.

 

열차는 1903년 7왕복까지 증설 운행하였으며, 이때부터 우각동, 부평, 오류동, 노량진, 용산역을 정차하지 않고 인천-유현-소사-남대문-경성역만 정차하는 급행열차 운행이 시작되었다.

▲ 경성역 구내 전경과 승강장의 모습     ©매일건설신문

 

시· 종착역인 경성역은 신문외(新門外)정거장이라고도 불렸으며 서양인들은 Seoul Station이라 했고, 1905년 4월13․14일 황성신문의 「3월27일부터 경인선 경성역을 서대문역이라 개칭함」이라는 경부철도주식회사 광고 내용은 철도청발행 역사연표 1905년 3월24일 기록(경성역을 남대문역으로 개칭, 서대문역은 그대로 사용)은 잘못된 내용임을 증명해준다.  

 

1905년 경성역이 서대문역으로 개명된 후 1923년 남대문역이 경성역으로 변경될 때까지 약 18년간 서울역이라 할 수 있는 “경성역”으로 불리는 역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5話」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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