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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제1話>
“조선정부가 최초 부설 하려던 철도는 경인철도가 아닌 경부선 철도였다.”
문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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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23 [08:3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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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註): 본지는 철도가 지닌 특별한 역사(歷史)성 즉 이 나라가 조선 말 겪은 격변의 시대를 단순히 교통 운송 수단이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숨결 같은 존재이기에, 또 철도史가 잘못 알려진 보편적 오류들이 한국사 안에서도 많아 철도문화협회 명예회장인 손길신 前 코레일 철도박물관장을 통해 바로잡고자 연속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조선정부가 최초 부설 하려던 철도는 경인철도가 아닌 경부선 철도였다.”필자는 한국철도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철도가 처음부터 일제에 의하여 계획되고 부설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     ©매일건설신문

필자는 한국철도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철도가 처음부터 일제에 의하여 계획되고 부설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간략히 철도관련 역사를 살펴보면, 1876년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김기수의 견문록인 ‘일동기유’를 통한 철도소개 또는 1883년 외국신문의 철도관련 기사를 번역해 실었던 한성순보의 기사, 기타 일본에서 철도이용 경험을 통한 철도부설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조선시대 최초 철도부설을 정부에 공식 건의한 사람은 주미 조선 대리공사 이하영이었다.

 

그는 주미조선공사관 근무 중 미국에서의 철도이용 경험을 통해서 조선에도 철도부설이 필요함을 궁중에서 고종과 대신들 앞에서 모형철도의 달리는 모습을 보여 주며, 철도부설의 필요성을 알리고 도입을 건의한 사실을 계기로 조선정부는 1892년 조선공사관을 도와주던 미국인 실업가 James R. Morse를 초빙하여 경부철도 부설을 협의했던 사실을 아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高宗 29, 壬辰(1892, 淸 德宗 光緖 18, 日本 明治 25) 412(庚子)

京釜 間 鐵路敷設하기 하여美國人모어스招請하여 李完用·李夏榮과 함께 敷設條件協議하게 한 바 그 가운데에는 敷設資金모어스出資하여 造設25年 內資金回收할 것과모어스에게 5個 金礦開設權을 주는 것 包含되어 있었다. 그러나 鄭秉夏 等極力 反對하여 마침내 鐵路敷設中止하게 되어모어스美國公使에게 말하여 이 날 美國公使督辦交涉通商事務 閔種默에게 照會하여모어스往來旅費 廢業損害 等 合計 10,000賠償要求하다.(舊韓國外交文書 第10卷 美案 993) 

고종29(1892412)

경부간 철도를 부설하기 위하여미국인모어스를 초청하여 이완용이하영과 함께 부설조건을 협의하게 한 바 그 가운데에는 부설자금을모어스가 출자하여 조설한 후 25년 내로 자금을 회수할 것과모어스에게 5개 금광개설권을 주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병하 등이 극력 반대하여 마침내 철도 부설을 중지하게 되어모어스가 미국공사에게 말하여 이 날 미국공사가 독판교섭통상사무 민종묵에게 조회하여모어스의 왕래여비 및 폐업손해 등 합계 10,000원의 배상을 요구하다.

(구한국외교문서 제10권 미안 993)

 

위의 자료에서 철도부설은 조선정부가 미국인을 일부러 초빙하여 경인철도가 아닌 경부철도 부설을 구체적으로 협의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을미사변의 역사를 통해서 경부철도 부설의 반대에 앞장섰던 정병하는 고종과 민비의 신임을 받아 왕실 재정을 맡았던 그가, 당시 일본 낭인들이 궁궐 안으로 침입하였을 때, 민비에게는 왕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거짓 보고를 하였고, 나아가 민비 폐비를 강력히 청하는 조칙(詔勅)을 썼다.

 

유교사상에 따라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신념으로 머리를 소중히 여기는 조선 사람의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는 임금이 먼저 단발의 시범을 보여야 된다며 강요하여 고종의 머리카락을 직접 잘랐던 자로, 아관파천 후 역적으로 몰려 피살되고, 군중들에 의해 찢겨진 시신이 종로에 버려진 친일파였음이 밝혀진 사실을 통해서 친일 세력이 미국인의 철도부설을 방해하여, 조선정부의 경부철도 부설의 꿈이 무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국에서 조선까지 출장 나온 Morse가 경부철도 부설협의가 무산되어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요구 금액 10,000원은 당시 쌀 2500가마니(80kg) 값에 상당한 금액으로 재정상태가 열악한 조선정부가 배상하기에는 너무 큰 거액이었다.

 

조선정부는 왕실조직을 혁신하면서 1894년 6월28일 의정부 공무아문 산하에 철도부설을 담당할 철도국을 설치하였고, 1896년 3월29일 Morse에게 경성~인천간 경인철도 부설을 허가함으로서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였다.

 

조선정부는 경인철도 부설허가 조건으로 1892년 경부철도 부설협의 때와 같은 방법으로 철도 부설자금은 Morse가 부담하여 완공하고, 15년 후에 당시 감정가격을 지불하고 조선정부가 매수할 것이며, 이때 조선정부가 매수를 못할 시 특허권을 10년간 연장하고, 그 때도 매수하지 못하면 또 10년간 특허권을 연장 한다는 조건이 포함되었다.

 

지금까지 최초 경부철도를 부설하려 했던 사실과 왜 경부철도 부설을 협의했던 미국인 Morse에게 경인철도 부설을 허가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이 모두가 일본정부가 원하는 바가 아닌 조선정부의 독자적인 계획과 조치였음을 확인하였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경인철도 부설과정과 일제의 경인철도 부설권 약취 과정을 통해서 한국 최초의 철도가 탄생된 역사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2話」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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