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무한한 확장성과 가능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쏘아올린 셀 수도 없는 인공위성과 초고속 유무선망, 첨단 모바일 기기를 통해 내가 서있는 위치는 물론 처음 찾아가는 어느 변두리 맛집까지도 아무런 불편 없이 안내해주는 최첨단 정보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최첨단 기술과학의 발전에도 우리는 우려 섞인 반문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과연 지구면적의 71%나 차지한다는 바다에 대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바다는 육상과 달리 바닷물이라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최근까지도 미지의 세계로 분류되었던 공간이다. 하지만 근대들어 무역과 국방, 자원채취 등 바다의 무한한 가치가 인류의 관점을 바꿔 놓았고, 바닷물에 가려진 그 안의 세계를 파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바다는 역사적으로 네덜란드, 스페인 등 유럽의 강세로 대항해시대를 거쳐 그 학문적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사실 수심(水潯)과 위치의 공간적 기반이라기보다는 육지와 바다의 수평적 분포에 중점을 둔 개념적 과학이었다. 미국, 영국 등 일부 선진 국가를 중심으로 바다를 깊이라는 공간개념으로 해석하게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이니 근대과학이 빛을 발한 것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바다의 가치가 날로 증대되고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의 수가 급증하면서 각 국가는 자국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한 수로정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수심을 측량해야 했고, 바다의 지도라 불리는 해도(海圖)를 간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수로측량과 해도를 제작하는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지만, 각 국가가 독자적으로 생산해 내는 정보의 기준차이로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에는 활용할 수 없는 문제점이 대두됐다.
이러한 국가 간 수로정보의 차이를 해소하고 항해자에게 표준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미국, 영국, 일본 등 18개 주요 선진국은 1921년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현재 88개국 참여)를 창설하기에 이르렀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 시기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비운과 함께 창설멤버로 참여하지 못했고, 당연히 수로측량 분야의 암흑기를 맞게 됐다.
이후 우리나라는 1949년 정식조직을 갖추고, 1957년이 돼서야 IHO 정회원으로 참여해 뒤늦게나마 관할해역에 대한 수로정보를 수집하고 해도를 간행하기 시작했지만, 측량선박과 장비 등 인프라는 물론 보유기술과 정보교류가 전무했던 상황이어서 선진국과의 기술경쟁 대열에 합류하기까지는 수많은 실패와 역경을 거쳐야만 했다.
2018년 현재 우리나라는 IHO 88개 회원국 중 해운선진국 10개국(우리나라 6위)에만 부여하는 이사국의 권한을 가지고 있고, ‘차세대 전자해도(e-Navigation) 선도국가’로 지정돼 IHO 전 회원국을 대표해 핵심기술을 개발·공유하고 있다. 또한 IHO와의 협약을 통해 매년 개발도상국의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으며, 극지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남극해 수로측량을 통한 해도를 제작·제공하고 있다.
현재의 수로측량은 이제 선박의 안전운항만을 위한 분야가 아니다. 침몰한 선박과 실종된 구난자를 수색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해안선의 길이를 측정하고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 등 해양영토 관리와 잠수함 등 해군의 작전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약적 발전과 성과에도 앞으로의 기대가 앞서는 것은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항해자 중심의 수심으로만 표기됐던 해도를 관할해역 국가해저지형표면 연계를 통해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사회, 해양개발·건설, 레저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도를 넓히기 위해 수로측량 체계를 개선하고, 우리나라의 강점인 IT기술을 활용해 무인항공기와 무인선박을 통한 수로측량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수로정보 분야의 명실상부한 일류가 될 것이다.
황준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수로측량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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