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취임 후 34일 만에 국회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취임 후 가장 이른 시점에 시정연설을 했다. 새 정부의 최대 현안인 일자리 창출과 추가경정예산 등에 대한 정치권의 초당적인 협조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된 것처럼 문 대통령의 국회 방문에선 시정연설에 앞서 이뤄진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에 관심이 집중됐다. 대화와 설득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인사 정국의 난맥이 풀리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리 뜻밖이었다. 외견상 멋진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시각 자유한국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차담회(茶啖會)에 불참했고, 자당 소속 의원들과 '인사실패 협치포기 문재인 정부 각성하라'는 구호가 적힌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국회 본회의장 의석 앞에 붙이고 있었다.
문 대통령도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원론적인 수준에서 야당의 협조를 당부하는 입장만 전달하는 수준에서 끝낸 뒤, 이내 '청취 모드'로 전환했다.
사실 15분 남짓한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돌파구 찾기가 쉽진 않았겠지만,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완 다른 '통 큰' 입장을 표명할 지에 주목했다.
이른바 5대 인사원칙의 약속이 허물어진 데 대해 솔직한 유감 표명 방식으로 야당에게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명분을 줄 것이란 관측이 그것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 당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협치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표결 참여란 '통 큰' 결단을 내렸던 것처럼…
하지만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 맨 끝 부분에서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상황에서 국정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국회의 협력을 부탁드린다"는 말로 인사청문회에 협력해 줄 것을 야당에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청와대는 추경편성의 시급성과 통과의 절박성에 집중키 위해 시정연설에 정치적 이슈를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사 정국의 파행이 최대 현안이 된 만큼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 기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국회와 국민을 설득했어야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이 직접 설득을 하지 않는데 야당이 강경한 태도를 바꿀 리 만무하다.
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본회의장을 떠나면서 여당은 물론 야당 의원들까지 일일이 찾아가 악수를 나누며, 눈 인사를 건네는 참으로 보기좋은 광경을 연출했다. 하지만 야당은 내용도 없는 보여주기식 '쇼통(Show통)'일 뿐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대통령 시정연설이 끝난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문재인 정부 초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지명 철회를 촉구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청와대는 최선을 다하되,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임명 강행을 암시했으며, 결국 지난 1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어 18일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임명했다.
야당이 마치 '낙마 게임'을 하듯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해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과 청와대도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지지율에 취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절박하면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할 텐데 양측이 모두 절박하지 않은 것 같다는 여론이다.
이처럼 대통령과 야당 등 정치권이 협치를 포기하고, '마이웨이 식' 힘겨루기만을 일삼는다면 양측 모두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외면한 처사란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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